매거진 작가 삼락

작가의 내면아이 2

학령 전 아이와 함께

by 바람

눈이 왔다. 길이 미끄럽다. 운전 중 차에서 삐삐빅, 빙판길을 조심하라는 신호음이 들렸다. 순간 무섭다. 가슴이 서늘했다. 나도 모르게 “괜찮아. 내가 곁에 있잖아”하고 혼잣말을 한다.


예전 같으면 왜 매번 나는 이럴까, 하는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섭지? 내가 조심할게’라고 자신을 토닥였다. 인격이 분리된, 마치 미친 사람 같지만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발전이다. 내면아이를 알게 되면서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졌다. 상처받은 어린아이로선 쉬이 두려워질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니 감싸주어야 한다.


나는 존(‘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의 저자)의 도움을 받아 한 발짝 더 가보기로 했다. 그는 전문적이면서 다정했다. 훌륭한 치료사라 할만했다. 존은 나를 잃어버린 시절로 부드럽게 이끌었다. 이번엔 유치원시기 아이와의 만남을 시도했다(뒤늦게 안 사실인데 페이지를 잘못 넘겨 유아기를 빼먹었다. 어쩔 수 없이 유아기는 패스).


우선, 이 시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아이의 에너지를 느껴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음~~ 좀, 곤란했다. 나의 유년기엔 지금처럼 유치원이 보편적이지 않았기에 나는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다. 마땅한 사진이 없고 당시의 기억도 거의 없다. 어떻게 그때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최근 산책 중에 마주쳤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날은 늦은 아침을 먹고 집 근처 공원에 갔었다. 공원은 유달리 시끌벅적했다. 고요한 아침 기운을 마구 흔들어 놓는 소리가 들렸다.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참새처럼 짹짹거리고 있었다. 공원과 맞닿은 비탈길을 내려오기 직전이었다. 등에 연두색 거북이를 짊어진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며 외쳤다.

“이렇게 옆으로~~ 꽃게처럼 걸으면 경사진 길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꽃게 걸음 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예!”하고 답했다. 하나같이 옆으로 아장아장 걸으며 “꽃게!”하고 소리쳤다. 평온한 시간을 방해받았지만 사방으로 퍼지는 아이들의 기운에 절로 웃음이 났다.

잔디가 많은 장소로 내려온 아이들이 토끼 선생님과 만났다. 아이들은 일제히 “토끼야. 어디 있었어? 계속 찾았잖아.” 외쳤다. 토끼 선생님은 “너희들을 찾고 있었지.”하며 아이들과 같은 톤으로 반가워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없는 동안 나무와 돌멩이 밑에 보물찾기 종이를 숨기고 있었다. 임무를 막 끝낸 참이었다.

아이들은 토끼 선생님을 둥글게 에워싸고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양명한 하늘 아래 세상만사가 신기하고 즐거웠다.


조금 뒤 아이들이 보물을 찾으러 뛰어다녔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몽글몽글함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사뿐해졌다. 이런 에너지를 느끼라는 건가. 여하튼 유치원시기 아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두 번째, 편지 쓰기.

어릴 때의 내가 엄마와 아빠에게 원했으나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쓰는 미션이다. 어른인 나에게도 편지를 쓴다.


1> 엄마에게

나는 엄마에게 거부당하는 게 힘들었어요. 곁에 있고 싶었어요. 엄마가 필요했어요.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딸이 되고 싶었어요. 엄마는 너무 슬퍼 보였어요. 엄마가 나를 보며 웃길 바랬어요. 나를 안아주세요.


아빠에게

나는 늘 아빠가 그리웠어요.

당신들을 사랑하는 딸로부터


2> 어른 바람에게

너를 만나서 기뻐. 나는 용기를 얻어가고 있어. 나를 안아줘서 고마워.

6살 바람으로부터


세 번째, 가족 안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한 역할과 상처 적기

나는 성취욕이 높은 아이, 보호자,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 같은 행동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잘못으로 여겼다.


네 번째, 아이를 위한 선언문 낭독

존이 작성한 문구인데, ‘네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렴’과 ‘부모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너는 아무 책임이 없어’ 부분이 가슴 아팠다.


다섯 번째, 유치원시기 아이에 대한 묵상

어른인 나는 뒤뜰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미래에서 온 천사가 되어준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아이의 옆모습을 내려다보는데 솜털 가득한 볼이 웃고 있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관심처럼 기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랑 가득 빛나는 아이의 눈을 보았다. 이런 눈빛의 아이였구나.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다. 눈 맞춤이 간절한 아이였다. 아이는 내게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해줬다.


학령 전 아이의 기억을 더듬는 일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시간들. 산책에서 만난 유치원생들 같은 에너지가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불쌍한 아이가 되기 싫어 미운아이를 선택했고 자신을 미워했다. 그걸 알고 나니 내면아이 치유 과정에 저항감이 올라왔다. 너무 아팠던 것이다. ‘나를 위해 준비된 책’을 잠시 접기로 했다. 마음의 근육이 더 커져야 한다. 언젠가 용기가 생기겠지. 그때 더 나아갈 것이다.

꿈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로 글을 마무리 짓겠다. (경제적 측면에서)성과 없는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용인하지 못해서 시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니 외부의 동의를 구하고, 받을 수 없는 동의에 자신을 부적절하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치유과정을 중단하면서 어린 시절 설정했던 ‘보호자’ 역할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차피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고 짊어지고만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다(내 이름이 ‘바람’인 것은 운명인 게지).


초등학교 때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 같다는 기분이 들지만 바람아, 이제 그만 내려놓자. 그래도 괜찮아. 베짱~~베짱~~ 이솝 우화와는 다른 결론이 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