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 삼락

작가의 내면아이 1

갓난아이와 함께

by 바람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일 년 전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를 선물 받았다. 성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각 가슴팍에 우울한 표정의 네 살 아이가 그려진 하드커버로 된 책이다.

회사 생활로 몹시 힘들어하던 때였다. 구성원 간 갈등이 극에 달해있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행태에 대해 토로하면 남편은 회사가 아니라 유치원 같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겉모습만 어른인, 아이를 품고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눈앞에 책을 들이밀었다.


글씨가 큰 편이고 여백도 많아 가독성이 좋을 것 같았지만 막상 서문을 읽고 나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면아이 치유과정을 시작하려고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몇 번을 시도하다 포기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억에도 없는 과거를 헤집어내는 것이 불편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책을 덮어 책장 구석에 꽂아두고는 잊어버렸다.


문득 이 책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의 꿈 때문이다. 나는 힘들 때마다 같은 스토리의 꿈을 꾸는데 며칠간 그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내용을 말하긴 좀 부끄럽다. 사법시험 2차에 떨어지고 막막한 심정에 휩싸인 꿈이기 때문이다. 안절부절못하고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꿈이다.

이 꿈은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시작해 사시를 그만두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 역사를 합하면 20년 이상 꾸어온 꿈이다. 등장인물은 꿈꿀 시기의 주변인물로 매번 바뀐다. 요즘은 변호사회 회장님, 이사님 혹은 십 년 후배 변호사들까지 같은 수험생으로 나온다. 비논리적인 상황이 꿈에선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같다. 갸우뚱하면서도 계속 꿈을 꾼다.


문제는 시험 꿈을 꾸고 나면 온몸이 아프다는 점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어쩔 줄 몰라한다. 절망감은 깨고 나서도 남아있다. 정신이 들면 고통이 생생히 각성된다. 여전히 이런 꿈에 시달리고 있다.

실패한 기억을 재생하는 꿈과 이 책을 읽는 것의 상관관계를 묻는다면 적절히 대답하긴 어렵다. 다만 책을 통해 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을 뿐이다. 아니면 이제야 내면아이를 치유할, 책을 소화할 준비가 되었고 꿈은 그저 핑계일지도 모른다.


책을 소개하기 전에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몇 가지 밝히겠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자신을 부족하고 부끄러운 존재라고 느낀다. 주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지만 무능하고 나약하다. 자주 두렵고 불안하고 강박적이다. 총체적으로 나는 나를 미워한다. 대충 이렇다.

오늘은 용기를 내 ‘당신 안의 갓난아이 치유하기’ 편을 시도해 보았다. 내면아이에게 편지 쓰기와 갓난아이에게서 온 편지 읽기, 선언문 낭독, 내면의 갓난아이 묵상 순으로 이어진다.


과제 1. 아이와 편지 주고받기(어른인 자신이 갓난아이 때의 자신을 입양하는 상상을 하면서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아기 바람에게


너는 정말 소중한 아이야. 외롭게 두었던 것 미안해. 무섭고 힘들었지? 너는 멋진 아이야. 너는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지. 너를 부끄러워해서 미안해. 이제 외롭지 않도록 내가 널 보살필게. 함께 있을게. 사랑해.

어른 바람으로부터


어른 바람에게


고마워. 나를 돌봐줘서.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야.

너를 믿어.

아기 바람으로부터



‘너를 부끄러워해서 미안해’와 ‘너를 믿어’를 쓰면서 펑펑 울었다.

과제 2. 내면아이에게 줄 확언(선언문) 전달하기

책에 적힌 존의 말을 내면아이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중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도 웃으셨단다” 부분이 가장 와닿았는데 존은 내가 감동받은 부분이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했고 들어야 했던 말이라고 설명했다.


과제 3. 내면의 갓난아이 묵상

문구를 따라가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느낌으로 돌아가 보고 태어난 당시를 상상해 본다. 성인이 된 내가 갓난아이를 안아주고 부드럽게 과제 2의 확언을 들려준다.


묵상은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손수건이나 휴지를 준비해두면 좋다고 했다. 처음엔 뭘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울었다. 휴지 반통을 다 쓴 것 같다.

나는 쉽게 두려움에 휩싸이는 자신을 자주 나무라곤 했는데 묵상을 통해 떠올린 나의 어린 시절은 아이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섭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올라오던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걸 몰라주고 매번 자신을 미워했다.


나는 아이가 느꼈던 두려움과 절망, 슬픔을 직면했다. 긴 시간 아무렇지 않은 듯 숨겨두었던 감정의 실체를 보고 나니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홀가분했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어른이 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는 앞으로도 계속 두려웠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꼭 안고 속삭였다. “네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너는 무사히 건강하게 자랐고 어려움을 견뎌냈어. 지금은 충분히 너 자신을 보호할 힘이 있단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곁에 있어 줄게.”

드디어 내 품에서 아이가 편안함을 느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