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 삼락

작가의 욕설

호랑말코 귀뚜라미 같은?

by 바람

평소 욕설을 하지 않는 사람도 운전 중에는 욕이 튀어나오곤 한다. 역주행이나 칼치기 운전을 하는 무뢰한을 만나면 나도 욕을 한다. 차 내부를 떠다니는 소리에 겸연쩍다. 반사적으로 뱉은 말의 실체가 욕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일은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분을 옆자리에 모시고 가는 길이라면 더욱 난감할 테다.


기본적으로 욕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불쾌하게 만든다. 그 발음이 거칠기도 하고 단어가 연상시키는 장면이 좀 거시기하다. 욕설은 대부분 근친상간과 형벌 관련 저주를 담고 있다(우리말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 연구 참조). 또한 다양한 줄임말로 변주되지만 동서양을 불문하고 비슷한 뜻을 지닌다. 다들 알고 있는 표현이니 예를 들지는 않겠다.


그럼에도 욕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일단 욕을 하면 분이 풀린다. 응당 받아야 할 벌을 욕이 대신 갚아준다는 기분이 든다. 때론 통증을 완화시킨다. 극심한 통증을 앓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욕을 하면 덜 아픈 것 같다. 입으로 나쁜 것을 배설함으로써 내부를 정화하는 효과라고나 할까.

하지만 어떤 식으로 변명해도 욕을 하는 자신을 돌아보면 기분이 별로다. 그래서 듣기에 덜 거북한 것으로 내가 선택한 욕은 ‘호랑말코’다. 사전을 찾아보면 ‘상대방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호랑말코를 생각하면 검고 커다란 콧구멍이 생각난다. 콧구멍에서 훌쩍하고 콧물이 흐를 것 같아서 “이 호랑말코를 봤나”라고 말하는 순간 피식 웃게 된다. 혹시 누가 듣게 된다고 해도 덜 민망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굉장히 화가 많이 난 경우에는 이걸로도 분이 덜 풀린다.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뒤늦게 걸린 코로나로 밤새 기침하다가 번뜩하고 떠오른 것이 “이 호랑말코 귀뚜라미 같은 놈아!”였다.

나는 이 욕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로 길게 내뱉고 나면 답답함이 쑥 내려가고 상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동생과 통화 중 ‘호랑말코 귀뚜라미 같은 놈’을 전파시키려 했다.


“Y야. 언냐가 개발한 욕인데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확 풀려”했더니 동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 하필 귀뚜라민데? 귀뚜라미는 뭔가 구슬프잖아. 울음소리도 그렇고 어쩌다 살짝 부딪히면 다리도 쉽게 으스러지는 것이 좀 불쌍하지 않아?”


의외의 반응에 나는 귀뚜라미가 벌레의 일종이니 욕설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그러자 Y는 자신의 아들이 메뚜기 혹은 방아깨비를 닮았기 때문에 곤충을 비하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멍멍이를 비하하는 게 더 용납하기 어렵지 않냐, 고 응수했다. 이 상큼한 표현에 반기를 들다니.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엔 남편에게 자못 진지하게 “여보. 화날 때 호랑말코 귀뚜라미 같은 놈이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당신도 한번 해봐”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같은데……”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욕이 뭐 논리적이어야 하나? 이렇게 말하면 뭔가 시각적, 청각적으로 자극이 되어 우스워지고 분노가 스르르 사라져.”


이렇게까지 하며 화날 때 써먹으라고 꼬드겼으나 결국 실패! 최측근도 이해시키지 못하다니.

뭔가 분하다. 큭큭. 이딴 소리를 동생과 남편에게 지껄이고 글까지 쓰고 있는 걸로 보아 역시 코로나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오늘로 격리 7일째. 이제 격리 해제까지 4시간 남았다. 속으로 호랑말코 귀뚜라미 같은 코로나, 외치며 답답함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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