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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찬 Jul 05. 2023

몸에 바다를 걸친 노인

빈센트 반 고흐, <울고 있는 노인 : 영원의 문턱에서>

빈센트 반 고흐, <울고 있는 노인 : 영원의 문턱에서(Sorrowing Old Man : At Eternity's Gate)>, 1890

(2019.09)


각 진 의자 위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노인이 앉아있다. 파란 옷은 앙상한 노인의 몸을 애써 감춰 주는 듯하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구두 혹은 군화에 잔뜩 묻은 때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다. 저 신발은 얼마나 많은 곳을 누비다가 요양원 구석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유난히 두꺼운 노인의 윤곽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존재를 뚜렷하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노인은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때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부위는 손. 특히나 그 뼈 마디마디다. 이때 손은 표정을 대신한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 아니 느껴지는 것은 노인을 향한 고흐의 시선이다. 두 번의 응시. 먼저 1882년 헤이그 요양원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때 고흐는 이 작품의 토대가 된 습작을 그렸다. 그리고 1890년, 이 그림을 그리며 8년 전의 습작을 바라보는 눈. 고흐가 셍 레미 정신요양원을 나가기 직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가 생을 마감하기 불과 두세 달 정도 전에 그린 그림. 누구도 알 수 없는 심정으로 펜과 붓을 놀렸을 고흐의 손은, 너무 당연하게도 그 두 번의 바라봄을 대신한다.


나는 최대한 이 두 손에 의지해 그림을 더듬어 갔다. 이때 노인과 고흐의 마음을 어림짐작해 보는 것은 내가 감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물론 완전히 그러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지만.


다시 말해보자. 노인은 얼굴을 가리고 있다. 제목에 따르면 그는 울고 있다. 어떤 이유로? 알 수 없다. 그는 퇴역 군인일 테고, 그런 그에게 삶이 내어준 아픔이 있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론 눈물의 이유를 조금도 알아낼 수 없다. 그에 앞서 중요한 것은 그가 울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고흐가 노인이 손으로 눈을 가린 그 순간을 포착했고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저 얼굴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얼굴을 들지 못하고 홀로 침잠하는 사람의 형상. 어쩌면 아주 순도 높은 집중이 저 가려진 얼굴에 있어서다. 고흐도 그걸 알고 있었을 테다. "노인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어떤 높은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고흐의 말. 여기서 '차원'이란, 스스로의 내면에, 그 깊은 슬픔에 오롯이 시간을 바쳐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이 그림에 '영원의 문턱에서'라는 부제를 붙인 고흐는 셍 레미 요양원의 문턱에 있었다. 그때 그는 8년 전의 습작을 찾았다. 화가 인생 초창기에 그린 무수한 습작 중 왜 그는 하필 이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한 걸까. 요양원을 나서며 다시 세상을 향해야 하는 자기 얼굴을 문득 가리고 싶었을까. 그가 느낀 두려움과 고뇌의 크기는 얼마만큼 커다랬을까. 부질없는 생각일 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드러난 노인의 마른 손처럼, 고흐가 자기 손으로 그린 그림은 그만의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그 표정이 나는 마냥 아프고, 그 아픔으로는 고흐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음에 조금 더 아프다.


벽난로에서 불타고 있는 장작이 보인다. 그 불에 기댄 채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룻바닥과 벽을 타고 꽤나 따뜻한 기운이 전해진다. 그럼 정말로 더 이상한 기분이 든다. 노인의 윤곽선만이 너무 짙어서 혼자만 포근한 온도와 동떨어진 듯한 느낌. 더 나아가 노인의 옷이 파란 불꽃처럼 보여서 가장 높은 온도로 가장 먼저 불타버릴 것만 같다.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 그런 그를 땅에 매어놓는 것은 저 인간적인 신발일 것이다. 그러니 벽난로와 신발이 주는 힘은 또 다른 고흐의 인장이다. 시골, 자연, 농부, 노동자들을 소재로 삶 자체를 그려내고자 했던 사람. 장작처럼 고통스럽게 불 타 없어지면서도 세상에 작은 온기를 더해주고자 했던 사람.


고흐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영원에 다다랐을까? 그라면 그곳의 풍경을 어떻게 그려낼까?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니 파란 불꽃처럼 보였던 노인의 옷이 어느새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눈에서 볼을 타고 흘렀을 눈물이 소매에 이르러 범람하기 시작한 듯이. 아득해진다. 몸에 바다를 한 벌 걸친 채, 언젠가 닿게 될 평온의 항구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을 한 사람이 있었다.


예술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있어.

예술이란 인간을 항구로 실어가는 강력한 조류 같은 것이라는 어떤 확신이야.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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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글을 옮기며 그림을 다시 본다

꼭 죽기 전 아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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