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조용히 지나 보내고, 방금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이번 주 초에 최근에 쓴 글 세 개를 첨부해 조금 충동적으로 작가 신청을 했었거든요. 마땅히 전문적으로 써낼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신청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량한 인정 욕구가 발휘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무 때나 개설해서 시작할 수 있는 블로그보다, 적어도 작가 신청이라는 창구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채널을 공개할 수 있는 브런치에서 새로운 쓰기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작은 울타리라도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몇 년 전에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괜히 마음이 작아져서 그 뒤로 다시 신청할 엄두가 안 났었어요. 나름 열심히 적었던 글들이 반려되고 나니 역시 스스로를 향한 믿음이 없어졌달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승인 메일을 받았습니다. 편하게 쓰세요, 하고 누군가 등을 토닥여 주는 느낌. 그래서 정말 편하게 쓰려고 합니다(그러고 싶습니다). 단, 쉽게 쓰지는 않으려고요.
그런데 무엇을 쓸까요.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제 이름은 두루 주에 빛날 찬. 주찬입니다. 기독교식 이름이기도 하지만 한자로 뜻을 풀면 그렇습니다. 두루두루 빛나라. 언젠가 제 이름을 지은 엄마가 이런 농담을 하신 적이 있어요. "두루두루 잘하라는 뜻 말고 하나만 제대로 잘하라는 뜻으로 지을 걸 그랬어." 제가 뭐 하나 확실하게 잘하는 게 없어 보이니 앞날이 걱정되셨겠죠. 역시 농담이 아니었던 건가…….
저는 잘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어요. 하지만 그 무엇도 제가 바라는 만큼 잘해본 적은 없었어요. 체육 선생님들께 축구와 농구 대표를 동시에 하도록 허락받은 전교 유일한 학생이었지만, 축구도 농구도 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로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골라보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저는 결국 고르지 못했습니다. 항상 갈팡질팡. '선택과 집중'은 제가 가장 자신 없는 분야였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여러 개의 우물을 퐁당퐁당 옮겨 다니는.
하지만 역시 저는 제 이름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어쩌겠습니까. 그게 난데. 두루 주에 걸맞게, 저는 두루두루 쓰게 될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쓰는 글, 책을 읽고 쓰는 글, 그냥 제 생각과 경험들, 조금 더 용기를 낸다면 제 습작시들 등등.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거창한 단어에는 조금 알러지가 있지만, 그저 그렇게 제가 이 공간에서 써내는 모든 글들이 총체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이루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자아가 너무 커지지 않게 조심하려고 해요.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만큼, 세상과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름의 박자를 맞추며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빛날 찬에 관해 말해야겠지요. 언젠가부터 가로등을 정말 좋아했어요. 저는 제가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세상에 나가지 않은 채 대전 구석의 고등학교에서 바라보던 세상 조차도 제게는 많이 커 보였거든요. 하지만 가로등을 보면 위로가 됐어요. 딱 자기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범위만 책임지는 매일매일의 루틴을 가로등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렇게만 살 수 있다면 참 보람된 인생이겠다, 막연히 생각하곤 했어요. 제가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러니 빛날 찬에는 조금 못 미치는 사람일 거예요. 하지만 빛을 내어주는 사람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언제나 제 자리에서 가로등처럼 불을 켜 두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제 이름이 많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언제든 와서 불빛을 쐬고 가세요.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