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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DITOR Jan 07. 2020

[2019.4] 가끔은 아다지오

What We're Reading #190

얼마 전, 꽤 오랜만에 타인으로부터 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를 잘 아는 친구가 이런 말을 건넸죠.


너는 모든 걸 정확하게 하려 하고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넘어가는데, 매사에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 때론 누군가에겐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요새 흔히 말하는, 뼈를 맞은 기분이었죠.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본 결과, '정확해야 한다'와 '가능하면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에디터로서 제가 글을 대하는 기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들은 슬금슬금 자신의 적용 범위를 넘어서 저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상황에까지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저는 일관성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함과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일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어떤 경우에는, 또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요.


돌이켜보니 이건 힘을 빼야 할 때 빼지 못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강약중강약'의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 제게는 늘 어려운 숙제였거든요.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핑계 아래, 모든 일에 힘을 가득 준 채 '강강강강강'으로 대한 적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인 듯하고요. 언제 어디서 힘을 빼야 하는지 모르고 지나가다 보니, '뭔지 몰라도 나는 피곤하게 사는 운명인가 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강강강강'으로는 한 편의 매력적인 이야기도, 하나의 아름다운 곡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약'과 '중강'이 빠진 채 '강'만으로 이루어진 리듬은 기대도 매력도 불러오지 못하는 단조로운 반복으로 이어질 뿐이니까요.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약'과 '중강'이 그 자체로는 '강'보다 약하지만, 전체 흐름 안에서는 그저 각자의 역할이 다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강', '중강', '약'이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겠죠.


제가 가장 아끼는 교향곡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인데요. 특히 3악장 아다지오 부분에서 울려 퍼지는 깊은 안도감이 담긴 소리를 좋아합니다. 빠르고 힘차게 진행되는(알레그로) 2악장과 4악장에서 사이에서 느리지만 침착하게 자기 몫을 다하는 아다지오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능숙하게 완급 조절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요.


2019년 4월 5일 금요일

꽃이 핀 주말, 정해진 시간 없이 산책에 나서려 하는 박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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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과 나누는 웃음엔 다른 세계 상상하는 힘 있어 읽어보기

말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웃음은 낚아채니까요. 직관력이 작용하는 거죠. 대화할 때 미미한 신호들이 엄청나게 오가잖아요. 그 신호를 서로 잘 파악하는 관계에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죠. 웃음도 잘 터지고요. 유머 감각은 결국 포괄적인 소통 능력을 파악하게 해주는 단서인 셈이에요. 유머가 뛰어나다는 것은 그 사람이 마음의 여러 가지 신호들, 무의식적인 파동을 잘 포착한다는 의미니까요. 결이 잘 맞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 혜강: 사회학자 김찬호의 신간과 함께 나온 인터뷰 기사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는 일, 일상의 재구성 등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는데요. 그중에서도 "유머란 일상에 작은 축제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국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현재 상황을 인지하면서 다른 상황도 받아들일 정서적 여유가 남아 있다는 뜻 아닐까요? 정확하고 솔직한 소통도 좋지만, 유머야말로 소통의 가장 고급 스킬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책 정보 보기

모르는 게 많아도 나는 아주 활동적이고 열심인 이탈리아어 독자면 족하다.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한계가 있는 조건을 더 좋아한다. 무지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 한계가 있음에도 지평선은 끝없이 펼쳐진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다른 언어로 읽는다는 건 성장과 가능성의 끝없는 상태를 내포한다. 배우는 초심자로서의 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으리라.


= 혜강: 이번 주 머리를 식힐 때 집어 들었던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줌파 라히리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이탈리아어로 이 책을 썼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영어만큼 이탈리아어를 잘하지는 못한다는 것. 오히려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로서의 모험이자 한계에 갇히지 않기 위한 시도에 가까웠습니다. 제게는 그 어떤 투지보다 강렬하게 와 닿았던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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