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초상화를 볼 때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색상 그리고 구성을 이루는 선들에 매료되었다면 자신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금번 카프의 30인 초상화전은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있다. 목탄으로 표현한 흑백의 질감으로 드러난 표정, 그리고 빛나는 눈동자와 표정은 그 사람 전체를 대하듯 눈길을 어디에 주어야 할지 막막해진다.
초상화는 남과 여, 중장년 모습이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의도된 측면의 모습, 그리고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고 웃는 모습,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띤 모습 등 초상화는 모두가 같은 듯 다르다. 작가가 이야기하듯이 "인생이 담긴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것이 여러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을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되고", 실물과 똑같이 그린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을 담았다. 사실적이 아니라 표정의 이미지를 통해 대상을 드러낸 것이다. 그 분위기는 묘하게 특징적이고 사실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환한 미소가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분위기 때문인듯하다.
작품 속 내 모습을 마주 보고 있으니 내가 아닌 듯 나인 듯 겸연쩍고 눈길을 마주하는 것이 쑥스러워진다. 거울에서 보던 내 모습, 사진으로 보던 내 모습이 아니라 나와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이렇게 생긴듯하다. 닮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인지 아니면 진짜 나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하나하나 뜯어보듯 바라본 모습에서 분명 내가 보았던 모습이 있다. 그런데 매일 같이 거울을 보면서 바라본 나의 모습이 이러했는지는 모르겠다.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사된 모습을 통해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의 눈은 진실이기도 하지만 거짓이기도 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나는 머리 스타일은 미용실에서 자른 지 하루 이틀 정도밖에 안 되었고 흰머리가 흘러내린 것을 보니 근래의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개가 살짝 우측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니 습관에 따른 중심이 흐트러진 모습이다. 표정을 보니 기분은 좋은데 드러내 웃지 않고 입을 꽉 다물었다. 옷을 보니 이른 봄에 입는 스타일이다. 티 하나에 카디건으로 봄을 나는 습관이 드러났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아직은 나이 든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주름을 없애고 얼굴을 팽팽하게 표현해 준 덕일 것이다. 나이 60이 다가오는 삶을 살아온 시간의 표현인가. 직장생활 동안 표정이 날카롭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그냥 평범한 아저씨가 아닌가. 얼굴은 삶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나의 얼굴은 젊은이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오면서 어떻게 변하였는가.
작가는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었다고 한다. 오늘 초상화 한 점 앞에서 내 삶의 무개를 재본다. 외면으로 진정한 인생의 모습이 다 드러나지는 못할지라도 객관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눈을 맞추고 바라보니 초상화 속의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타자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누구일까.
* 초상화전은 한국미술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국초등학교 "학교 안 작은 미술관" 만들기 사업 후원자에게 초상화를 선물하는 의미로 전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