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지치거나 즐거움 가득할 때다. 너무 힘들면 기댈 곳을 생각하고 즐거우면 함께 나눌 상대를 찾게 된다. 모자람과 넘침의 관계다. 그것이 바로 내 몸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다. 주변에 가득한 에너지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기에 서로 나누어 채우며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누구나 평범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이유다. 일상에서 느끼는 그런 기운을, 그림을 통해 보게 된다. 작은 캔버스 틀 안의 공간에서 나타나는 기운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머리가 아니라 온몸이 반응한다. 작가가 지닌 에너지를 관객이 공유하는 것이다. 교감이다. 작품을 통해 얻는 기운은 오래도록 쌓이며 몸을 지탱한다. 육체를 통해 정신이 건강해진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신동권 작가의 일출-신망애는 우주의 기운이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태양, 나무, 사람, 바다 등은 실체 없는 기운을 드러내기 위한 형상이다. 그래서 태양은 우주가 되고 나무와 사람은 그 기운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 실체는 수많은 사람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숲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하나의 거대한 고목으로 드러난다. 특히 초기 작품 중에는 태양 아래 숲의 형상을 보이는 많은 나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그 나무는 커다란 고목으로 합쳐져 기운을 하나로 묶어주는 형태를 띠게 되며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작가의 작품에서 느끼는 가장 강렬함은 바로 색의 조합이다. 같은 구도의 작품일지라도 그 색의 변화를 통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 속의 형태와 색이 그 기운을 달리 보이게 한다. 붉은 기운이 강한 작품을 중심으로 파란색과 보라색 그리고 에메랄드빛 등 자연의 색으로 표현된다. 색을 통해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고 감정의 변화를 끌어낸다. 그런 의미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려는 방법이 바로 작품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캔버스뿐 아니라 나무와 돌 등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가 된다. 그 다양성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기운은 그런 재료와 색의 조합에 의해 탄생한다.
아래 두 작품은 어떤가. 비슷하지만 색과 구도에 의해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파란색은 숲속에서 오로라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우주공간의 변화를 단순하면서도 압축적으로 묘사하여 자연의 변화무쌍한 느낌을 깊이 있게 전달했다. 오로라가 감싸고 숲으로 이어지는 기운은 땅과 하늘이 함께 어우러지며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에너지다. 그 기운은 순환하며 공간을 채운다. 일출의 순간에 느끼는 붉은 기운보다 더 강렬한 파란 불꽃을 보듯이 세상은 회오리치는 기운으로 멈추어 버렸다. 그 끊임없이 순환하는 기운을 바라보며 나 자신 또한 그 일부분이 되었음을 느낀다.
그렇지만 붉은 작품은 사막에서 바라다본 대지의 기운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정적에 감싸인 공간 속에 저 멀리 홀로 서 있는 거대한 나무가 세상을 떠받치듯 서 있다. 그것은 작가가 느꼈던 공간에 대한 표현이다. 너무 붉다 못해 검게 보이는 앞쪽의 풍경 속에서 홀연히 서 있는 나무는 우주의 기운과 대지의 기운을 가득 담은 채 세상을 향해 그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 광활한 사막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어떨 것인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홀로 서 있는 듯 모든 것을 삼키어 버린 순간에 보게 되는 풍경은 대자연의 힘 그 자체이다. 그 기운은 스스로 받아들일 때 나와 하나가 된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강렬하면서도 부드럽다. 모든 것을 감싸안기 때문이다. 태양이 닿는 그 모든 곳에 기운이 일어난다. 그것이 작품 제목에서 보듯이 일출-신망애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다. 그의 작품은 우주를 품고 생명 존중과 환희, 창조의 세계를 나타낸다. 작품이 끝없이 변화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