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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혜 Apr 28. 2017

4월의 제주

제! 주!  


유채꽃 안녕

유럽을 여행하면서 제일 그리운 건 제주도였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절경인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해안과 포지타노에 다녀와도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제주도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미루고 미루다 4월 1일이 되어, 거짓말처럼 제주에 도착했다. 


주말을 꽉 채워 다녀오는 비행기 표를 샀다. 가격을 보면 쉽게 결제 버튼이 안 눌리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비행기 표를 사고는 신나서 계획을 세운다고 세웠는데, 결국엔 계획이 거의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상태로 도착. 


그래도 좋았다. 제주도니까. 


조금은 시든 야자수.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푸릇푸릇 살아나겠지.
길을 따라 늘어선 돌담을 보면 제주도에 왔구나 싶다. 


3년 전에도 4년 전에도, 4월의 제주도에 왔다. 바람이 세서 머리칼이 격하게 휘날리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바람이다. 비가 온다더니 딱 걷기 좋은 날씨였다. 


그래서일까. 무지 걸었다. 걷고 싶어서 걸은 것보다 어쩌다보니 걸은 게 더 많지만 어찌됐든 걸었다. 

시작은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앱이 알려준 대로 정류장에 내리니 아무것도 없는 길 한복판.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서 있다가 우린 웃음이 터졌다. 


"여기 어디야 으하하하"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그 자리부터 20분 정도를 더 걸어가라고 한다. 30분은 걸어야겠다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길을 가다 보니 말도 안 되게 감동스러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아 깜짝 선물이야 뭐야. 제주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감동스런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아, 눈으로 맘껏 담았다. 다시 그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까.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사진. 드문드문 집이 있는 길 한 가운데.
귤나무가 ♡
눈속임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카페(ex해성이용원)


그 후로도 2시간 정도를 더 걸었다. 러닝화를 신고 왔으면 더 사뿐사뿐 걸었을 텐데, 사진에 예쁘게 나오겠다며 신고 온 스니커즈가 내 발목을 잡는다. 


내가 여행을 한 주는 가톨릭 전례로는 사순 시기였다.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로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기. 나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마는 사순 시기가 되면 생각이 많아지고 긴장을 한다. 마침 숙소 근처에 성당이 있어 시간을 내 찾았다.

 

제주도에서 드린 첫 번째 미사. 미사 시작 전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새롭다. 지구를 위한 기도라니. 제주도 답달까.  

저희가 이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하게 하시며 오염과 파괴가 아닌 아름다움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경외로 가득 차 바라보며 모든 피조물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도록 저희를 가르쳐 주소서. 아멘.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 중)


길 중간중간 붙은 표지판 덕에 순례길을 알게 됐다. 
서귀포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서귀포 성당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넋 놓고 책 읽고 글도 쓰겠다며 떠났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 이틀 동안 한 장소에서 가만히 책을 읽기엔 제주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해가 넘어간다. Before midnight을 보고 나서 부턴 "still there..still there..." 타령. 
예쁜 함덕
예쁜 함덕 2 
바다바다 


제주도 이주를 4년 전쯤 고민했다.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서 지원한 제주도에 있는 회사에 합격도 했었다. 이주비를 지원해주니 집부터 알아보라는 전화를 받고, 덜컥 겁이 났지만 말이다. 대학교를 갓 졸업해 여행 말고는 한 번도 서울을 떠나본 적 없던 나는 선뜻 이주를 선택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랬다. 


개 안녕
이 집
저 집 

제주도로 이주하려는 마음은 이제 접었다. 부동산값이 많이 올랐다는 말에 알아보지도 않고 '비쌀 거야'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 제주도는 나에게 그냥 제주도였으면 좋겠기도 하고. 쓰고 보니 딱히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 꿈같은 제주는 꿈으로 두기로 했다. 

한 번씩 다녀올 수 있는 꿈이니까 제법 괜찮은 것 같다. 아, 글을 쓴 김에 비행기 티켓을 알아봐야겠다. 언제가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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