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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20. 2020

연순 씨

연순 씨는 다시 요양원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얼마 전에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는 사실은 기억이 났다가도 다시 희미해진다. 기억이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잠만 그렇게도 쏟아져 내리 누워서 잤던 그곳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착하디 착한 큰 며느리와 아들이 있는 집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딸을 붙잡고 떼를 썼다. 불퉁대는 작은 사위는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인상을 쓰곤 하지만 연순 씨를 집에 모시기로 한 것은 분명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작은 딸이 밤 근무를 하는 날에는 10분 거리에 사는 큰 딸이 와서 연순 씨와 함께 밤을 보냈다.
                   
연순 씨는 요즘 자주 시간여행을 한다. 다섯 살 아래 동생인 연수가 남편에게 맞고서 멍든 눈을 하고 울던 것이 자꾸 생각이 난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연수를, 연순 씨는 보러 가야겠다고 매일 밤 방문을 나선다. 작은 딸이 말리고 말려야 주저앉지만 연수가 눈에 아른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깡마른 다리를 하고 소변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나면 잠귀 밝은 큰 딸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데려간다. 그런데 한참을 앉아있어도 소변이 나오지 않아 옷을 입고 자리에 누웠는데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소변이 마려워진다. 딸이 알아채기도 전에 원망스럽게도 잠자리를 적셔버리고 만다. 다시 잠들어버린 딸을 뒤로하고 서랍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젖은 옷을 벗지도 않고 그 위에 입고 입고 또 입었다.
 
연순 씨는 자꾸 배가 고프다. 작은 딸이 밥을 차려줬는데도, 함께 밥을 한 공기 가득 먹었는데도, 사위가 들어와 저녁을 먹으면 다시 배가 고프다. “엄마 아까 밥 한 공기 가득 드셨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배가 고파 밥을 또 먹는다. 밤새 더부룩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또 작은 딸의 잠을 설치게 해 버렸다.
 
연순 씨는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살았던 이리, 지금의 익산에 내려가야 한다고 짐을 싼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남편이 왠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밥을 굶고 있을 것만 같아서, 밥을 차려주러 내려가야 한다고 가방을 가져와서 옷가지를 집어넣는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엄마. 아버지 이제 세상에 안 계셔.”라고 말을 하면 그제서야 모든 것이 떠오른다.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고 울던 남편은 이제 세상에 없다. 나만 이렇게 남아서 딸들을 힘들게 하고 있구나, 가슴에 번열증이 나서 갑갑해지지만 날이 밝아오면 그뿐, 연순 씨는 곧 지금을 잊고만다.


연순 씨는 희뿌연 구름 위를, 울면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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