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일만 있으면 엄마 생신이다!"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손가락 꼼지락거리며 날짜를 세었다.
식구 많은 집에는 생일도 많다. 누군가의 생일이 끝 나갈 때 즈음 다음 타자가 누군지 지목하는 것이 우리 집 관례 아닌 관례가 되었다.
아이들의 호들갑과는 별개로 내게는 별 감흥 없이 서른아홉 번째 내 생일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물론 친구들도 시어머니도 남편도 축하해주는 생일이 반갑지는 않아도 그 마음들이 넘치게 고마웠다.
셋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넷째를 유모차에 태워 돌아오며 지난주에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신 외할머니 소식을 전해주던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그래도 매해 내 생일에는 전화로라도 축하를 해주시던 엄마였는데 지금은 할머니 때문에 정신이 없으셔서 날짜 가는 것도 모르시겠다 싶었다.
나도 여름에 아이를 낳아보았지만 우리 엄마도 이런 더운 여름에 첫 아이를 낳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온 내게 별일이 없는 건지 먼저 물으시는 걸 보니 내 생일인지 모르시는가 보다 했다.
엄마는 할머니 병세가 더 심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면회도 허락되지 않아 격리 중이라는 말에 내 생일을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엄마 걱정이 먼저 됐다.
그제야 내 안부를 재차 묻는 엄마에게, 무엇이 왈칵 쏟아질지 모르는 아슬함에 뜨거워지는 목에서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그 아슬함은 전화기에서 화살이라도 쏘아져 나간 듯 엄마에게도 옮겨져, 아이고, 엄마가 더 고맙다 는 말이 엄마 목에서도 울컥거리며 새어 나왔다.
사정없이 일렁이는 목소리들로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얼른 말을 돌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옆에서 나뒹굴던 아이들의 잠옷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았다.
세상에 태어나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마흔의 문턱에서, 엄마에게 처음 해본 것만 같은,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이후로도 몇 번 더 되뇌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