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ways and Ever, Jeff Beck
제프 벡(Jeff Beck)의 내한 공연은 2010년대에 걸쳐 세 차례 진행되었다. 그의 음악에 영향받았던 가수 이승환이 2010년 첫 내한 공연에 불을 지폈고, 이후 2014년과 2017년에 제프 벡의 음악은 한국에서 연달아 연주되었다. 그의 내한 공연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올림픽홀에서 진행된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 그는 오프닝으로 4곡을 연주한 이후 “지금 연주할 곡을 세월호 희생자에게 바치고 싶다. 이 곡은 희망을 담은 노래이다.”라는 말과 함께 ‘People Get Ready’를 연주했다. 제프 벡은 일평생 자신의 음악을 통해 인간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연구를 거듭해 나온 뮤지션이자 철학자였다.
신에 등장한지 어느덧 60년, ‘기타의 신’으로 추앙받던 제프 벡은 벡, 보거트&어피스(Beck, Bogert & Appice)와의 공동작업 이후 네 번째 콜라보 작품으로 앨범 [18]을 2022년 6월 10일에 내놓았다. 이 음반은 배우 조니 뎁(Johnny Depp)과 함께 작업해서 내놓은 이색적인 결과물이었다. 같은 해 9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13집 [Patient Number 9]이 발표되었다.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잭 와일드(Zakk Wylde) 등 최정상급 기타리스트들이 투입된 이 앨범에서 제프 벡은 2개의 트랙에 참여해서 신들린 연주를 실어냈다.
1944년생의 제프 벡은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이였다. 넓은 음역을 오가며 강렬한 텐션을 담아낸 ‘Patient Number 9’과 타이틀곡 ‘A Thousand Shades’는 제프 벡과 오지 오스본이라는 환상적인 합을 보여주며 곧장 명곡 반열에 올랐다. 앨범을 접한 적잖은 이들은 1948년생인 오지 오스본의 건강상태를 유추했을 때 ‘[Patient Number 9]이 그의 유작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보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앨범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유별난 기우였을까. 죽음의 그림자는 올해 1월 10일 제프 벡에게 향했다. 국내외의 여러 뮤지션과 관계자들은 제프 벡의 죽음을 기리는 다양한 추모글을 남기며 그의 음악과 삶을 언급했다.
‘Jeff Beck’이라는 이름은 팝과 록의 역사를 상징하는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 제프 벡의 연주 스타일과 결과물은 동시대는 물론 현재의 기타 입문자들에게도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다. 실제로 그의 연주와 다양한 테크닉은 뮤지션들조차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하고 독창적이었다. 그는 1968년 [Truth]를 시작으로 [Loud Hailer](2016)까지 14장의 솔로 작품을 발표했으며, 4장의 공동 작품을 포함해서 총 17장의 스튜디오 음반을 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8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8개의 골드 앨범까지 획득했다. 특히 [Blow by Blow](1975)와 [Beck-Ola](1969), [Wired](1976) 등은 팝음악사에 거대한 화석으로 남겨졌다. 또한 1977년 장르 파괴자로 손꼽히는 얀 해머(Jan hammer)와 2년 여 간에 걸쳐 진행된 공연 중 주요 트랙을 수록한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는 현재에도 많은 이들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부여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프 벡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전신 밴드였던 야드버즈(The Yardbirds)와 자신의 밴드(The Jeff Beck Group), 그리고 벡, 보거트&어피스 등을 조직해서 블루스와 하드록, 퓨전, 일렉트로닉 등의 장르를 오가며 수많은 명연과 명작을 내놓았다. 그는 여러 스타일과 응용을 통해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완성하고 탐닉해 나온 대가였다. 10대 중반의 제프 벡은 보 디들리(Bo Didely)가 1950년대에 선보인 바 있는 피드백(Feedback)의 가능성을 그만의 조직적이고 독보적인 스타일로 완성했다. 이처럼 제프 벡은 야드버즈 가입 이전에 이미 기타리스트로서 여러 실험적인 기법과 시도를 전개했으며, 나이프 시프트(The Knife Shift) 등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유행하던 리듬앤블루스를 변형한 음악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야드버즈는 에릭 클랩튼을 이어 가입한 제프 벡을 맞이하며 음악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영국 싱글 차트 2위와 빌보드 9위까지 올랐던 ‘Heartfull Of Soul’은 팬더 텔레캐스터 특유의 감각과 제프 벡 음악의 청사진이 나열된 넘버로 기록되고 있다. 야드버즈의 멤버로 그가 남긴 유일한 스튜디오 음반은 [Roger the Engineer](1966)이다. 이 앨범에는 제프 벡 테크닉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Jeff's Boogie’와 ‘Lost Woman’ 등의 명곡이 수록되었으며, 이는 레드 제플린의 탄생을 가늠한 작품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영향력과 비중적인 면에서 대형 밴드를 리드할 수 있는 위치의 제프 벡이었지만, 그는 1968년 첫 솔로 작품 [Truth]를 시작으로 묵묵히 독립적인 음악 인생을 걸어 나왔다. 시드 배릿(Syd Barrett. 기타, 보컬)의 가입을 전후해서 장르적으로 변형을 가미했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1967년 데뷔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내놓았다. 비틀스(Beatles)의 [Revolver]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과 함께 영국 사이키델릭의 효시로 손꼽히는 이 앨범은 시드 배릿의 천부적인 역량과 아티스트로서의 기질이 특히 빛난 작품이다. 그러나 앨범 발매 이후 시드 배릿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자, 멤버들은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 기타, 보컬)를 새로운 멤버로 맞이하게 된다. 길모어의 가입은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이 공을 들여 시도하려 했던 제프 벡을 대신한 결과였다. 1969년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기타)가 사망한 이후 믹 테일러(Mick Taylor. 기타)로 교체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흐름에서도 이와 비슷한 흔적이 발견된다.
자신만의 영역 안에서 수많은 명곡과 장르의 융합을 이뤄낸 제프 벡의 음악은 에릭 클랩튼의 추모글(Always and Ever)처럼 이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고 사랑받을 것임에 분명하다.
- 이 글은 월간 재즈피플 2023년 2월호에 개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