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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l 12. 2024

빗소리 듣기가 쉽지 않은 장마철

 눈을 뜨자마자 협탁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날씨 정보를 찾아봤다. 새벽 내 비가 왔다고 한다. 창 밖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 어제 본 기상 예보에서는 종일 비가 온다 했다. 또 틀렸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빗소리 듣기가 쉽지 않다. 기상청 체육대회 때에도 비가 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완벽할 수 없지.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순간은 가질 수 있다. 빗소리 대신 비구름이 남겨 놓은 소리를 듣는다.


 빗방울이 먼저 고여 있던 빗방울을 밀친다. 문을 두드리라고 밀친다. 그러더니 곧 한 몸이 된다. 오랜만에 방문한 지인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기 전 주저하고 재촉하는 마음들 같다. 물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어수선한 마음을 이겨내고 문이 아니라 지붕을 통해 방문한 이는 누구일까. 당장 생각해 봐도 지붕을 통과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이가 많았다.


 검지를 구부려 허공을 두드려본다. 아무 소리 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떨어지는 물소리에 맞춰 검지를 움직인다. 검지로 두드리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 소리가 다른 것일까. 왜 그렇게 정중한 것일까. 왜 그렇게 필사적인 것일까. 처음 검지로 문을 두드린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게 되었을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물방울이 떨어져 나는 소리 하나로 서로의 방문을 알린다. 닿지 못할 이들에게 거절당하고 싶은 마음을 생각했다.



 장마를 핑계로 며칠간 텃밭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집에서 나가질 않았다. 종일 누워 있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뭘 해야 먹고살 수 있을까.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고 싶어 입을 벌리다 다문다. 중얼거려 봤자 나올 말은 뻔했다. 입만 벌리면 돈 달라는 소리뿐이라며 아빠에 대해 한탄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음은 바깥이 아닌 적이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 현관문을 두드려봤다. 열어주는 사람도 반겨주는 사람도 그렇다고 방문을 거절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중지나 검지를 구부려 문을 두드리는 것을 몰라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던 시절이 있었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철문은 요란한 소리로 경고했다. 그가 나올 것이라고 물러서라고 아니 도망치라고 경고했다.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드려보려다 만다. 해리포터 세계관에선 보가트라는 생물이 나온다. 마주하면 대상이 제일 공포를 느끼는 것으로 변한다고 한다. 우리 세계관에서 보가트는 생물이 아니다. 세계 그 자체다. 문을 두드리면 이제는 그가 아니라 어린 내가 튀어나올 것이다.


 문은 결국 내가 열어야 한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일기예보를 본다. 오늘 저녁에 오늘 저녁이 아니라면 내일 새벽에 비가 올 수 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는 것처럼 방으로 향한다. 장마가 끝나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근을 뽑고 상추도 정리해야지. 잡초 정리도 해야겠다. 물방울처럼 해야 할 일들이 나를 밀치고 있다. 흐르거나 떨어지거나 아무튼 움직이기 위해 잠시 고여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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