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39세 경제적 자유 호소인의 새로운 꿈을 찾는 여정의 시작!
2013년 1월 첫 직장생활 이후13년 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근로소득에 종지부를 찍었다.
첫 번째 커리어는 대기업 그룹공채로 시작했다. 신입사원으로 시작하여 힘든 일도 겪었지만, 특유의 붙임성을 무기로 잘 적응해 나갔다. 대리진급 후 굵직한 업무를 맡고 좋은 성과도 내며 위아래로 인정받았다. 결코 불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6년의 시간이 무섭도록 매정하게 지나갔다.
과장진급을 앞둔 2019년 어느 날, 기회는 운명처럼 찾아와 마구 흔들어댔다. 그렇게 전혀 새로운 인생이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직원 7명 남짓, 새롭게 떠오르던 스타트업의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회사의 대표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대기업의 안락한 품에 안주하며 지냈으나, 1년간의 설득 끝에 친구의 회사로 이직했다. 조촐한 외인구단으로 시작한 회사는 합류한 지 3년 만에 무섭게 성장하여, 2021년 기준 연매출 500억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제적 해자 없이 중소기업의 경영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작은 변화에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생명의 불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변화의 파고속 생존하지 못하고 영광의 6년을 뒤로한 채 사업을 접었다.
야인이 되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다른 회사에 이직할 것인가? 창업을 할 것인가? 문제의 보기는 선택하기 힘들 만큼 많았다. 그리고 결국 선택했다. 39년 남을 위해 살았다면, 남은 인생 절반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정답이다" 생각했다. 퇴직 후 한 달간 다양한 이직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모두 거절한 끝에 "꿈을 이루고자"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은퇴가 필요했다.
어릴 적부터 경제적 결핍은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어머니는 매일 휴일도 없이 12시간의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렸다. 6살 차이의 남동생은 의지할 수 있는 형제가 아니라 돌봐야 하는 자식이었다. 모든 불편이 경제적 결핍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지금도 부인할 수 없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건 어느 문학교과서에서 배운 시처럼 '8할이 바람'이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 속에서 강박이라는 불안감이 내 고통 위에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강박은 '고혈압'이라는 병을 주었지만, 강한 '생활력'이라는 선물도 주었다. 돈이라는 존재는 늘 아껴야 하는 대상이다. 언제부턴가 절약의 태도는 '삶을 관통하는 습관'이 되어 가장 소중한 가치관으로 남았다. 결혼 전엔 근로소득의 90% 이상을 저축했다. 한 달 용돈 30만 원으로 젊은 혈기를 누르고, 친구들과 동료들의 다양한 유혹을 뿌리치며 버텼다. 결혼 후에도 맞벌이 근로소득의 80% 이상을 저축했다. 생각이 많이 달랐던 아내였지만, 미래비전을 앞세워 끊임없이 설득했다. 지금 아내는 누구보다도 나와 닮은 거울 같은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계획적으로 예산을 세워 맞벌이 근로소득의 70% 이상을 저축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쉽게 가지는 것을 쉽게 갖지 못하는 것부터 배웠다.
악착같이 모은 시드머니는 투자자라는 새로운 직업을 주었다. 돈을 절대 은행에 두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극도로 줄인 생활비에서 잉여자금을 만들었다. 은행의 대출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4년 처음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시기는 부동산 투자의 황금기였다. 정말 발에 차이는 모든 것이 기회였다. 서울과 수도권의 핵심입지 아파트들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결혼 전 소득으로는 기회가 제한적이지만, 맞벌이 소득을 통해 저축액이 거의 배로 늘었다. 그 돈으로 4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2017년 더 이상 아파트가 저렴하지 않았다. 바닥 대비 가격이 많이 올랐고,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벌어졌다. 일반적인 회사원의 저축으로 매입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고평가 된 자산에 빚을 활용하여 투자할 수 없었다. 2019년까지 쉬지 않고 빚만 갚았다. 이전까지 매입해 둔 아파트들은 보유 중이다. 정부에서 장려한 장기주택임대사업자가 되었다. 그러다 한 순간 적폐가 되어버렸다. 본래 상태는 변한 것이 없는데 세상의 시선이 변해버린 것이다.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에서 적극 장려한 주택임대사업자 제도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죄악시되었다. 선의가 악의가 되는 것은 당사자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투자를 멈추고 2019년까지 신용대출부터 담보대출까지 모든 빚들을 청산했다. 현금이 쌓이기 시작하자 새로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절대로 돈을 은행에 두지 않았다. 주식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주식은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투자원칙 없이 견디기 힘든 투자대상이었다. 몇 개월의 시간을 공부만 했다. 다량의 독서로 투자원칙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주식 투자방법을 한 권의 책을 통해 접했다. 유레카! 바로 이것이었다. 미국 나스닥의 긴 역사동안 차트는 나스닥이 꾸준히 우상향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현금이 생길 때마다 미국 나스닥 시가총액 최상단의 몇 개 종목에 원칙을 세워 투자했다. 이후 차트는 이전의 차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큰 수익을 안겨 줬다는 뜻이다.
야인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턴 앞으로 이루어 나갈 꿈을 말하고 싶다.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고민을 많이 했다. 억지로 은퇴하여 남은 인생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 싫었다. 고통 속에 박힌 강박들이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흘러나와 깊은 우울의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근로소득의 길을 다시 가는 것이 가치 있는 시간일까?"
깊은 고민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만큼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내면 깊숙이 숨겨진 욕망을 찾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솔직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두 가지 조건을 기초로 꿈을 이룰 목표를 수립했다.
첫 번째 조건 : "혼자 하는 일을 한다."
그동안 경영진의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상처받고 지쳐있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해 살며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책임져 줄 수 없는 일에 다른 사람들을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여 오롯이 혼자 책임지고 싶었다.
두 번째 조건 :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한다."
은퇴가 결정되고 사회에 머물 자리가 없다는 불안감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늘 필요한 사람이었다. 더 이상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리지 않자, 나의 가치라는 마음속 울림도 멈춰버렸다. 앞으로 할 직업이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이어야 멈춰버린 심장도 다시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결국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목표 1) 투자법인 설립
혹시 마이클 버리를 아는가?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정확히 예측하여 큰돈을 벌었던 사람이다. 그가 얼마 전 본인의 헤지펀드인 "사이언자산운용"을 청산하고 패밀리오피스로 전환했다.
김승호 회장을 아는가?
스노폭스라는 도시락업체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사업을 매각하여 "짐킴홀딩스"라는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여 1조 원의 자산을 운용 중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재야의 고수들이 자기만의 회사에 몸을 숨기고 부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패밀리오피스란 무엇인가?
쉽게 이야기해서 투자법인이다. 다만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와의 차이점은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 혹은 개인 소유의 자산을 팀을 구성하여 운용한다는 점이다. 즉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언젠간 팀을 꾸려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우선은 개인 투자법인을 설립하여 의사결정에서 누구도 개입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여 책임지고 싶다. 투자금이 세상에 가치 있는 산업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은 사회가 되는데 한 스푼의 영향이라도 끼치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목표 2) 작가
투자법인 설립이 경제적 열망을 이루는 도구라면, 작가는 자아적 성취욕을 자극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꿈이다.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도 않았었고 많이 써보지도 못했다. 다만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이 직업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글 쓰는 감각이 뛰어난 천재도 아니고, 다양한 습작활동을 한 경험도 없다. 단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였다. 생각에서 머무른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용기를 내어 뭐든 써보고자 한다. 기왕이면 작게나마 성공한 분야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또 실패한 분야에서 무엇을 경계하면 좋을지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글이 사람들을 통해 소비된다면 꼭 돈을 벌지 않아도 좋다. 조용히 혼자 일하고, 사회에 경험이라는 가치가 전달된다면 두 가지 조건에 정확히 충족하는 직업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속 소중히 간직해 둔 꿈을 현실적인 이유로 혹은 행동보다 앞선 걱정에 망설이고 있지는 않은가? 무언가 변화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을 실천해 보길 추천한다. 큰 변화도 작은 행동들 하나가 켜켜이 쌓여서 생긴다.
나에겐 꿈이 있었다. 추상적인 꿈을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한 구체적 목표로 수립했다. 두 가지 목표의 달성을 위해 행동하며 나의 가치를 사회에 증명할 것이다. 때때로 쉽게 이루어지는 일도 있고, 힘든 고통도 닥칠 것이다. 다만 행동해야 성취도 고난도 존재한다. 고통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짜릿한 성취감도 절대 느낄 수 없다. 지금 꿈이 있다면 기준을 세워 목표를 수립하길 바란다. 지금 꿈이 없다면 자신의 내면을 곰곰이 들여다보길 바란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