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uffy moment Jun 02. 2021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 시리즈를 쓰기로 하고 난 뒤, 당연하게도 미리 글감들을 정리해 두었다. 그동안의 메모들을 다시 살펴보고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비슷한 생각들을 모아 작은 묶음을 만들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정해진) 수요마감이 돌아오면 그 묶음을 들여다보고 쓸 수 있는 것을 골라 쓰고는 했다.


수요일 오후 3시를 훌쩍 넘어 해가 지고 있는 지금. (그렇다, 수요마감에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아직도 마음이 끌리는 묶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요즘 사로잡힌 충동을 쓰기로 한다. 요즘 두 가지 충동에 시달리고 있는데 타투와 탈색이다. 내 얇은 곱슬머리는 매번 하는 매직 스트레이트도 버거워한다. 그러니 탈색은 당연히 내 머리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오래 부질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포기하는데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남의 머리 사진이나 탈색 후 관리, 탈색 후 물 빠짐 같은 걸 검색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니 다음 주제를 고를 시간이 없지)


타투를 고민하는 건 처음은 아니다. 작년 4월에 이미 한차례 앓고 지나갔다. 타투하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도안이 될 사진을 고르고, 위치를 고르고, 진짜 하고 싶은 게 맞는지 또 고민하고… 그렇게 무수한 시간을 들여서 결정을 내렸다. 예약이 열리자마자 문의를 남겼는데 허무하게도 불발되었다. 당시에는 왜인지 몰라서 의뢰한 사진이 작업하기 어려운가, 사이즈의 문제인가, 위치가 별로인가, 내가 고민해서 문의한 그 모든 결정이 다 별로였던 건가 하는 의문만 남았다.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그분은 하얀 강아지 작업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야 알게 된 이유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일 년 만에 다시 같은 충동이 찾아왔는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고민만 길어진다. 지워지지 않게 새기는 것을 기억의 한 방식으로 삼는 것은 좋은데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 고통으로써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고 하는 거 아닐까. 함께 찾아온 충동이 타투와 탈색이라니. 강아지를 기억한다는 빌미로 나 자신에게 통증을 주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다.


피부 위에 이미 생긴 흉터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때부터 잘 넘어져서 무릎은 이미 포화이고, 이제는 끝인 줄 알았는데 스물아홉 출근길에 거하게 넘어져 무릎과 손등에 새로운 흉터가 남았다. (내 무릎에 아직 흉터가 생길 자리가 남아있었다니) 같은 손의 중앙에는 작고 하얀 흉터가 있다. 주먹을 쥐고 달을 셀 때, 3월과 12월이 되는 손등 뼈 위쪽에 컵케이크 위에 뿌려진 스프링클 같기도 한 그 자국.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거기에 있는 줄 알기 때문에 보이는 자국. 어린 내가 어린 강아지의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알아차릴 만큼 사려 깊지 못해서 생긴 흔적들.


선택하지 않았고 우연히 생겨난 흉터들을 보면 까만색의 흔적 하나 더 생기는 것쯤 대수롭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통증을 예상하고 고심해서 남기기로 선택한 흔적과 그저 부주의의 결과인 원래의 흉터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어져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사진첩에 폴더를 만들어서 의뢰하고 싶은, 심장 가까운 쪽의 팔에 그대로 옮겨두고 싶은 모습을 찾아서 모아 두고 있다. 그러다 문득 손등의, 손가락이 이어지는 부근에 있는 작은 송곳니를 닮은 그 흔적에 눈길이 닿는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묻는듯한 작은 흉터가 거기에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먼저 떠난 털 친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