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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샘 Sep 22. 2024

흐르고 흘러



아빠의 놀이와 엄마의 놀이는 다르다. 큰 고민하지 않고도 아빠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특히 아들과의 육아에서는 아빠의 강력한 몸놀이가 최고 인기다. 하원후에 아이들과 뭐할지 고민하고 검색하는 엄마의 정성과 달리 아빠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그런 아빠의 무성의하고 날것의 투박한 육아를 아이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집 아들들은 아빠와 노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나에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이들의 흥분에 가득찬 눈빛과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팔다리가 그것을 증명한다. 아이들은 순수해서 말 한마디 않고도 몸으로 많은 것을 진실되게 표현한다. 자연스럽게 나는 감독관같은 엄마가 되었고 남편은 친구같은 아빠가 되었다. 둘다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니 차라리 잘된 것 같다. 엄마아빠가 둘다 관리형 부모이거나, 둘다 방임형 부모인것보다는 균형을 이루는 편이 낫지 않은가. 그렇다고 남편이 아이들을 방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생활의 작은 부분을 조율한다면 남편은 강력한 한방을 날리며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한다. 

남자와 여자의 육아는 결이 다르지만 그 다름이 아이들에게는 쉼터가 된다. 하루종일 아빠와 놀다가 지친 아이들은 내게 책을 잃어달라고 가까이 와 앉는다. 책을 몇권 읽다가 지루해진 아이들은 다시 아빠에게로 가서 블럭으로 기차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한창 난장판으로 놀다가 배가 고파진 아이들은 다시 내게 와서 배고프다고 칭얼 거린다. 아빠가 아이들을 씻기면 나는 옷을 입히고 로션을 발라준다. 그러면 남편은 아이들의 머리를 곱게 손질해서 드라이해준다. 잠자리 독서는 내 담당이고 서너권 책을 읽어준 다음 불을 끄면 남편이 핸드폰으로 잠자리 동화를 튼다. 아이들은 그  소리를 가만가만 듣다가 잠에 빠진다. 나와 남편은 오늘 하루의 육아와 일을 마치고 각자 집안을 정리한 다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책을 좀 읽고 남편은 게임을 한다. 우리는 완전히 다르지만 함께 움직인다. 

남편을 흔히들 남의 편이라고 부르던데, 글쎄다. 남의 편이라도 내 옆에 두고 같이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홀로 되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두분을 보면서 늘 남편의 빈자리가 두분의 삶에 어떤 외로움을 드리웠을지 상상하곤 한다. 엄마는 홀로 된 외로움을 각종 취미생활로 잊으시는 것 같고 시어머니는 형님이 옆에 계시니 딸래미와 맛난것 먹으러 다니고 손주들 보는 재미로 사실 것이다. 혼자서도 할 것이 넘쳐나는 즐거운 세상이지만, 내 사랑하는 엄마 두 분이 잠드시는 안방에는 돌아가신 우리 아빠와 시아버지의 오래된 사진이 늘 가만히 서 있다. 잠든 두 분을 지키는 건 멀리 타지에 있는 자식들이 아니라 머리맡에 놓인 죽은 남편의 얼굴이다. 나는 그래서 언젠가 남의 편이 될 내 편을 아끼고 사랑할 결심을 한다. 같은 성을 가진 남자 셋와 다른 성의 여자 한 명이 사는 우리집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른다.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다른 성의 두 강줄기가 흐르고 흘러 바다로 향한다. 

그 바다를 우리는 가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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