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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샘 Sep 22. 2024

무자식이 상팔자



베프를 만났다. 친구는 자식이 없고 나는 자식이 둘 딸린 엄마가 되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사랑하는 내 친구는 자식이 있든 없든 자신을 아낄 줄 아는 자존감이 높은 녀석이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를 만나면 나는 늘 고민을 토로하고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동갑네기 심리학자 혹은 정신과 의사로 변신하여 나를 상담하고 진단하고 위로해주었다. 내가 녀석의 인생에 어떤 위안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인생의 고비마다 귀를 열고 경청의 위로를 건넸다. 백마디의 말보다 기나긴 침묵과 끄덕임이 훨씬 힘이 된다는 것을 녀석을 통해 배웠다. 

백화점에서 만난 녀석은 이미 마음을 먹고 온 듯 쇼핑을 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 했다. 씀씀이가 나와 달랐다. 녀석은 아이들 한달 학원비보다 비싼 구두와 소고기 몇 팩은 살 수 있는 가격의 헤어 에센스를 샀다. 사랑하는 녀석에게 어울릴만한 앞 코가 뽀족한 신발을 골라주었는데 잘 어울렸다. 점원은 최고급의 소가죽에 발목을 잡아주는 탄탄한 스트랩이 등장이라며 신발을 사랑했다. 가을을 닮은 초콜릿색의 낮은 굽 디자인이 고왔다. 친구는 내게도 여러 디자인을 권유했는데 하나같이 예쁘고 사고 싶은 것들이었다. 점심으로 사 먹은 장어 덮밥의 가격이 이만원을 넘어서 편치 않았다. 

녀석이 산 헤어미스트의 브랜드는 나도 결혼 전에 애용했다. 이리 비싼 화장품을 얼굴도 아니고 머리결에 투자할 생각을 했다니 나도 어렸을 때는 나름의 사치를 부렸구나하고 생각했다. 가격이 사악한만큼 확실히 머리결을 개선시키는데는 도움이 되는 제품이었고 무엇보다 향이 참 좋았다. 친구가 산 제품은 민트와 레몬향의 은은한 조합이 코를 상큼하게 간지럽혔다. 젊음의 향기 같았다. 나도 아직 30대이지만 이미 내 삶은 많이 늙어버린 것 같다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 옷 선물을 하겠다며 아동복 코너의 제일 앞에 걸린 신상 상하벌세트를 고르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또 마음이 서늘해졌다. 녀석은 무해했지만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친정식구들과 남편,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가족들은 내가 철들긴 멀었다고 별안간 역정을 내고 혀를 끌끌 찼다. 마음씨고운 남편은 떼를 쓰며 우는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아이들을 이내 안심시키며 나는 ’엄마는 괜찮다‘며 눈물을 훔쳤다. 가족들은 우스갯소리로 친정엄마가 투자한 비인기 코인이 급상하거나 남편이 두세번의 연봉협상으로 형편이 극적으로 좋아지는 미래를 그렸다. 그런 미래가 온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딸린 자식들의 입과 옷을 먼저 챙기는 부모일 것은 변함이 없었다. 내일은 아이들로 인해 무한히 행복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자꾸만 서글퍼지고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자식이 상팔자일까 아닐까,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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