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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샘 Sep 22. 2024

헬로,헬로 나의 친구 카봇



몬테소리, 발도르프, 원목교구 이런 것들에 한창 빠졌을 때가 있었다. 현란한 소리와 눈을 찌르는 반짝이는 장난감들은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선물을 받은 건 어쩔수 없었지만 내 돈으로 사주는 장난감은 교육적으로 좋다는 것들을 엄선해서 구비해두었다. 두뇌발달, 소근육발달에 좋다는 광고문구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나도 결국 별수 없는 보통의 엄마였다.  

요즘 우리집을 점령한 것은 헬로카봇 특공대다. 한두개 모으던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던 수수한 두 아들에게 남편은 판도라의 상자를 투척했다. 그는 최근 원하던 회사로 이직확정을 받아 기분이 무척 좋았고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딩동,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큰 택배상자가 턱 놓여있었다. 크기도 기능도 제각각인데 하나같이 멋진 자태를 뽐내는 카봇들이 자그마치 열개가 넘었다. 화룡점정은 카봇 시계였다. 그 시계는 밤에 불을 끄고 천장에 빛을 쏠 수 있는 엄청난 기능을 갖고 있었다. 

가르쳐준 적 없는 데도 아이들은 어디선가 헬로카봇 노래를 듣고 외웠다. 한글 애니매이션 영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녀석들이 헬로카봇, 티니팡, 슈퍼다이노 등 또래 친구들이 열광하는 만화 캐릭터를 알리가 없었다. 텔레비전으로 본 적 없는데도 녀석들은 주제곡을 열창했고 각 캐릭터의 이름을 줄줄 외웠다. 미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쌓아올린 공든 탑을 가뿐히 뛰어 넘고 녀석들은 장난감의 세계, 자본의 세상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다. 비싼 원목교구는 아이들에게 시시한 것이 되었다. 최대한 느리게, 가능하면 아주 멀리 돌아가는 느린 육아를 하고 싶었다. 엄마의 계획은 언제나 자식들의 꿈틀거리는 자생력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뭣이 중한디, 발도르프면 어떻고 카봇이면 어떠랴.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카봇의 주제가가 귀성길 차 안을 가득 채우니, 그것으로 충만하다. 이제 걸어두었던 빗장을 자의반 타의반 활짝 열고 환영의 인사를 건네야만 한다. 녀석들의 가장 친애하는 친구여, 어서오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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