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고 다양한 인간 관계의 필요성.
우리는 때때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답답함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게 실타래처럼 엉키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엉킨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서로 간의 신뢰와 이해심을 바탕으로 엉킨 것들을 쉽게 풀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간의 세월이나 신뢰가 무색할 만큼 단단히 꼬여 도무지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관계들도 있다. 아무리 단단한 것도 한두 번의 시도로 풀리는 경우는 아마도 가족이나 그에 버금가는 끈끈함이 원동력이 되고 서로의 의지가 있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바탕이 되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심하게 얽힌 실타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엔 그간의 시간과 경험이 무색할 만큼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잘라내는 것만이 해결 방법일 때도 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솔직함과 진정성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믿어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그저 한 가지 공통점만 가지고도 평생 우정을 약속해도 될 만큼 끈끈한 소속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서 비롯된 고집과 판단력으로 수십 년 우정을 수십 년 지인으로 전락시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우정을 지속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한 신뢰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한두 번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나의 성격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는가를 돌아보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엉킨 실타래는 어쩌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때로는 오랜 친구니까 무조건 이해할 거라는 막연함에서 또 때로는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근거 없는 신뢰로 그동안 차곡차곡 엉켜왔던 실타래를 방치한 것이 세월이 흐른 지금 도무지 풀 수 없는 엉킨 실타래로 마주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의 솔직함은 근거 없는 비난으로 나의 진정성은 그저 잘 포장된 가식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게 새삼 내가 얻은 교훈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내향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는 명랑함이나 밝은 모습 또는 스스럼없이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그저 내 환경이 만들어낸 모습일 뿐 나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며 경계심이 많고 때로는 내 틀과 울타리를 벗어나는 행동과 생각들이 모두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며 그것의 불편함을 극도로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성격 탓에 다양한 인간관계보다는 소수의 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은 가족이나, 일, 친구,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관계에 적용되었다. 그렇게 집중하는 나의 습관은 스스로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를 가두고 스스로가 정의하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 외에는 상대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헛헛한 묶음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가 묶어놓은 환경에서 나를 괴롭히던 모든 관계를 끊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단절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막상 열어보니 그렇게 단절할 관계도 많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나는 집중했다 하였고 그 몇몇의 관계는 평생 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으며 그래서 누군가는 나의 단절을 안타까워하겠지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얻은 것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뿐이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굳이 단절을 선언할 만큼의 관계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집중했던 관계들은 그저 나 혼자만 그렇다고 믿었던 것이지 그들도 나와 동등한 가치로 나와의 관계를 바라보지는 않았으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나의 실수는 그동안 내게 다가왔던 수많은 관계들을 집중하는 몇몇의 관계면 족하다는 이유로 내 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그저 겉모습만으로 좋은 사람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은 내가 집중했던 그 관계들에서 불거졌다. 상대는 나만큼 내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기엔 나의 어리석음이 컸으며, 그냥 모두 내 맘과 같으리라는 막연한 신뢰와 그들은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했던 부족함의 결과였다. 나는 내가 솔직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집중하고 있으니 상대도 그러리라 믿었던 것 같다. 솔직함과 진정성은 그저 나라는 사람이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일 뿐 내가 이해하는 것을 그들도 공감하면서 지난 세월에 대한 선입견마저 한방에 날려줄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원했던 등가교환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나의 집중이 최근 만나지는 인연에도 어김없이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성격상의 문제이니 쉽게 고쳐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고 또 변화하는 나를 기대하며 예전의 관계에 대한 단절을 선언하였다면 나의 모든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모든 상대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코드가 맞아서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통했다 하더라도 나의 모든 것을 공감할 수는 없으며 나만큼 집중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또한 어떤 관계이든 엉킨 실타래처럼 차근차근 풀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얼마큼 엉켜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느슨하게 얽힌 실타래는 한두 번의 시도로도 쉽게 풀릴 수 있는 반면 단단하게 얽힌 실타래는 아무리 집중해서 애쓴다고 해도 풀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느슨하고 다양한 관계 맺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 시작되는 관계는 물론 지금껏 엉켜서 아무리 집중해도 풀리지 않는 관계까지도 조금은 그냥 내려두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그렇게 느슨하게 모든 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