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안부를 전하다

누구도 묻지 않는 안부를 스스로 전하는 마음

by 셈프레

아주 오래되었다.

몇 안 되는 오래된 내 주변인들은 오래전부터 먼저 나의 안부를 물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나 또한 먼저 그들의 안부를 묻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아주 쓸쓸한 마음으로 스스로 내 안부를 단톡에 올리고는 했다.

아마도 공감이 없는 관계란 것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누군가의 안부가 올라오면 "그래 그렇게 지냈구나"의 반응을 보이는 것.

어느 날 그마저도 그들에겐 참 피곤한 일이었겠구나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내 지인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네가 예민한 거야, 사람들은 너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맞는 말이다. 내가 그런 것에 민감한 게 맞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 내 안부를 물어봐 주고, 내가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렇게 공감하는 관계를 다른 이들보다 더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내가 예민하다고 말하지만 그 예민함을 존중해줄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안다.


세상의 많은 관계 중 서로가 원하는 만큼 딱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아예

없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는 36년 친구들을 36년 지인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인과 친구의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친구'라는 개념의 차이가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물론 '친구'라는 정의가 다르다고, 함께 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믿음이 무너지는 건 아닐 것이다. 따뜻한 손이라던가, 의지라던가, 마음을 털어놓는다던가, 언제든 달려와 줄 거라는 믿음이라던가, 섭섭함을 표현해도 이해해줄 거라는 등등의 것들에 대한 기대가 사라질 뿐이지, 나를 미워한다거나, 해코지 한다거나, 내가 잘 안 되길 바라고 방해한다거나, 뒤에서 욕을 하고 다닐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더 씁쓸한 마음이 남는다. 친구란 정의는 누가 생각해도 그것보다는 이상이 되어야 할텐데라는 기대를 끝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마 '친구'라는 호칭을 버리지 못하는건 어떤 이유에서건 함께 했던 세월 때문이 아닐까싶다.


최근에서야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다.

나의 성향이 어디서부터 또는 왜 그렇게 형성되었을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알게 된 어떤 분에게 나는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 '늘 생글생글 웃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어서 더더욱 내 머릿속에는 "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 첫인상이라는 게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더 씁쓸해졌다.

나 또한 그 생글생글 웃는 친절함 때문에 스스로도 주야장천 외향형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내가 인정하게 된 나는 아마도 그 밝음과 어두움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내향형의 인간이다.

낯을 가리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사람을 사귀기도 어렵고 먼저 다가가지도 못한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나를 '그렇게 보이는 사람'으로 만들었을 뿐,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쿨하게 다 넘어갈 것 같은 사람은 못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잘 맞는 사람일 것 같아서 관계라는 걸 형성하게 되면, 늘 집중하는 성향과 그것에 대한 기대로 상대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것을 원하고는 한다. 거리두기에 실패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관계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관계에서 더 그렇다.

내가 믿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등가교환을 해야 하는 가치의 동등함은 늘 조금씩,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주 많이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나조차도 잘 몰랐던 나를 그들이 이해할 거라는 대단한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이해하고 나니 그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늘 완벽하려고 하는 것,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하는 것,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등등의 나의 모습은 스스로가 늘 버거웠다. 그래서 그걸 몰라주는 상대들에게 원망이 많았다. 내 능력이 넘쳐서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라 모자라는 능력으로 바등바등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니 나와는 다르게 매사에 그냥 그런가 보다 넘어가는 것 같은 그들의 행동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넘어 무시라고까지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들의 방법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산다고 했지만 그건 내 기준일 뿐 그들의 기준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걸 표현하는 나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냥 난 그런 사람이었고 그들도 또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힘든 만큼 그들도 힘들었던 것이다.


이젠 묻지 않는 내 안부를 스스로 알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이해되었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차원은 아니다. 그냥 내 성향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굳이 내 안부를 먼저 알리면서 그걸 먼저 물어봐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 따위는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먼저 알리든 그렇지 않든 그들에게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사람'이고, 현실적으로도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맞다. 그러니 그저 혹시라도 내가 혼자 못 살아서 안부를 물어주길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오래오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면 될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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