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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a May 26. 2019

번쩍이는 창의력은 허상이다

creative는 번개같은 섬광이 아닌 '배양'의 영역

드물게 완독한 책이다. 흡입력이 높은 편이며, 최대한 다양한 관점과 물음을 제시하면서 저자 스스로의 주장을 검증 해 나간다. 때문에 꽤나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생각지 못한 관점이 나올 때마다 매우 흥미롭다고 느꼈다.




크리에이티브, 선택받은 자만 가지는 선천적 기질인가?


크리에이티브는 후천적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저자인 Allen Gannett(앨런 가넷)은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와 신경과학적 근거까지 제시한다. 폴 매카트니가 꿈에서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듯 떠올랐다고 말한 불후의 명곡 '예스터데이', 알고보면 몇 년에 걸쳐 치열한 수정과 변형 끝에 탄생했다(주변에서 그놈의 노래에 그만 좀 미련가지란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기차 역 옆 카페에서 휴지조각에 뚝딱 써내려갔다는 해리포터 제작 신화, 이 역시도 알고보면 '크리에이티브 커브(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철저한 습관과 패턴의 원칙)'에 따른 결과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롤링은 성인이 되어서도 탐욕스럽게 책을 읽었다. 롤링은 장차 창작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원료를 공급받기 위해 치열할 정도로 소비에 몰두했다. 그녀의 성공 사례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영감으로 하룻밤 사이에 대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아니다. 제1권 제1장의 변종만 '15종'이 있었고, 롤링이 플롯을 짜기 위해 사용한 호그와트와 해리포터 교실의 모든 등장인물을 담은 도표도 있었다.
- the creative curve 中 -



문제는 이러한 위대한 업적이 꾸준한 노력(물론 노력 외 타이밍과 운도 따른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인정한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창작자 본인 조차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니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 특히 언론은 창의력을 아주 드문 소수들만의 고유 영역으로 포장해 각종 기사를 내놓기 딱 좋다. 그걸 보는 우리는 좌절하는 한편 그들처럼 '섬광'같은 영감이 떠오르길 기대한다. 사실 크리에이티브가 그런 신화적인 우연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인지하는 것 자체가 좌절과 포기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다.



인상깊게 읽은 책. 한글제목은 영 마음에 안든다. 그 이유는 글 말미에 나온다.



그냥 노오-력말고 목적이 있는 노력


이쯤되면 "그래, 기약없이 무지막지하게 또 노오-력을 하라는 말이지?"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노력, 노력, 노력! 자기계발서가 범하기 쉬운 폭력적 잣대가 아닌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다행히 그런 책은 아니었다. 노오-력의 전형인 1만시간법칙의 헛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그를 대체할 방법론을 제시한다. 또한 그 방법론이 효과적이라는 신경과학적 근거도 덧붙인다. 가장 설득력있는 사례가 버스기사와 택시기사였다.


버스기사와 택시기사는 온종일 동일하게 '운전'을 한다. 똑같은 노력(경험의 시간)하, 둘 중 creative 영역은 누가 더 강할까? 실제로 기억력과 창의력에 연관이 있는 뇌의 '해마' 크기를 비교한 결과, 정답은 택시기사였다. 동일 시간 운전을 하더라도, 택시기사는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목적'을 설정해야한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항상 정해진 루트를 가지고 운전을 한다. 아주 오랜시간 반복적으로 노력한다고 남들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즉, 투자시간(경험)의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방향성(목적)이 있는 경험이 더 중요한 것이다.



물론 위 연구는 네비게이션 대중화 전의 일이다. 요즘 택시기사는 네비 도입 이전 시절보다 현저히 작은 해마를 가졌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하체를 강화시키겠다고 맨날 하체운동만 하다가 인바디를 재보니 상하체 '심한불균형'이 왔다. 그런데 웃긴게 상체가 하체 대비 더 약해졌다보니, 상체를 강화시킬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힘든 과정이라 그냥 하체를 해 버리곤 했었다(돌이켜보면 하체운동 초기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통을 겪었다는걸 알면서도). 나와 똑같은 시간 운동을 했더라도 약한 상체 운동을 강화했다면 나보다 뛰어난 신체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목적이 있는 노력이란 이런 것이다. 반복이 아닌 향상을 위한 트레이닝이다. 현 시점의 나를 인지하고 그때마다 다른 목적을 설정 하고 움직이는 것. 이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1만시간이 될 수도, 400시간이 될 수도 5만시간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을 익히고 나면 더 이상 의식적으로 기술을 향상시키려고 애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운전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출퇴근 시간에 운전을 하면서도 우리는 좀 더 안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회전이나 가속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운전은 어느새 운전자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 몸이 따라가는 행위가 된다.                                                                                                                         - the creative curve 中 -




생후 8주 뇌세포


그럼 목적이 있는 노력을 얼마나 해야 효과가 있는걸까. 나이가 들어 뇌가 굳었는데 한다고 될까. 60분 동안의 컴퓨터 교육을 10번 한 경험이 노인의 두뇌 성능에 미친 영향이 10년 넘게 지속된 사례가 있다. 뇌와 관련된 훈련을 아무리 짧게 경험한다고 해도 두뇌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 책에서 제시하는 '두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의 개념이다.


인간은 하루에 1400개의 신규 뇌세포를 만들어내는데 그 싱싱한 뇌세포는 두뇌에서 가장 활동적인 영역으로 가서 8주동안 성숙기를 거친다. 물론 새로운 경험으로 세포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세포는 죽는다. 그렇다면 최소한 8주동안 목적이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우리의 파릇파릇한 뇌세포가 전보다는 creative한 두뇌로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



두뇌는 편견으로 가득하지만, 갓 태어난 뇌세포는 생각보다 유연하다.



희망고문 말고, 염세주의도 말고


이 책은 막연히 “너도 할 수 있어”식의 노력 강요책이 아니다. 창의력에 대한 환상을 이성적인 논리로 일단 깨준다. 이는 (저자가 의도했든 안했든) 독자로 하여금 염세주의를 탈피하고 노력을 하도록 유도한다. 즉, 자연스럽게 ‘동기부여’의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거부감이 없다.


통찰력도 상당하다. 그러면서도 매우 현실적이다. 창의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문지기’, 즉 타인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생각. 창의적 공동체의 중요성이 커질 수록 여성/소수자들은 창작분야에서 인정받기 힘들다는 점, 국부가 높은 나라일 수록 창작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등 독자가 여전히 좌절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미디어와 소비자와 문지기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실질적 속성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브랜드를 팔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둔한 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예술가의 이미지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중략) 안타까운 것은 창의적 공동체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여성과 소수자들은 창작 분야에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최고' 기업가나 예술가 혹은 셰프, 그밖에 창의적인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목록에는 백인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 the creative curve 中 -




번역책 제목, 자극적으로 좀 짓지 말자


전반적으로 감성적 주제를 굉장히 차분하고 꼼꼼하게 다루는 이 책. 다 읽고 나서 문득 생각난 책이 ‘냉정한 이타주의자’였다. 그 책 역시 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이 책보다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이다. 해당 책을 재밌게 읽은 분이라면 추천한다.


아쉬웠던 점은 다 읽고 나서야 공감 안 되는 한글 책이름이었다. 영문 원작의 제목은 THE CREATIVE CURVE, 매우 적절하다(본 글에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브에 대해 개념설명을 일일이 하지 않았지만, 책에서는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나온다). 그러나 한글명은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인데, 다소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핵심소재는 돈이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creative’에 대한 편견과 진실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인간이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뜬 구름 잡지 않는 크리에이티브 되는 법’ 과 같은 제목을 썼다면 다 읽고나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다 못해 한글명의 부제(전 세계가 열광한 빅히트 아이디어의 비밀)를 활용하여 ‘누구나 가능한 빅히트 아이디어 메이킹 법칙’ 따위의 제목을 썼어도 보다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추가적으로, 본문 디테일에서는 탁월할 정도로 좋은 한글 단어를 선택했다고 느꼈지만, 정작 핵심 단어는 적절치 못한 한글번역어를 썼다고 생각한다. 이는 책 읽는 데에 다소 흐름이 끊기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크리에이티브커브의 4가지 법칙 중 ‘소비’라 표현한 것은 ‘축적’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보다 심도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무식할 정도의 한 분야에 대한 소비, 즉 지식/노하우 축적을 통해 남들과 다른 something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논리니까).


마찬가지로 크리에이티브 법칙 중 ‘반복’ ‘다듬기’로 적었다면 직관적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동일한 내용을 반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통일된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반복해서 수정하여 다듬는다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액션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무언가 창의적인 maker가 되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읽고 나서 insight를 얻었을 뿐 아니라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액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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