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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Mar 16. 2017

TU Delft

교환학생 후기

교내 소식지에 올린 후기문.

쓴 김에 업로드!



  재작년, 그러니까 3학년 가을학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대학생일 때 해볼 수 있는 더 재미있는 것을 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늦바람이라 하죠) 그러면서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나 봅니다. 3학년을 다 마친 상황이었기에 부랴부랴 교환을 신청해서 나간다 해도 4학년 2학기에 나갈 수 있었고, 이는 곧 5학년 확정을 의미했기에 다소 걱정은 되었지만, 막상 교환학생에 붙고 나니 신난 마음에 지연된 졸업은 안중에서 사라지더군요. 이렇게 제 6개월 간의 교환 생활은 시작됐습니다.

  급하게 시작한 것과는 달리, 졸업을 1년 미뤘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교환학생을 신청한 것은 좋은 선택이 되어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델프트에서의 낯선 생활, 전공 관련 학업, 여행, 여유로운 생활. 이 네 가지가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징들입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보기도 하고, 다른 대학의 새로운 커리큘럼을 보며 공부해보고, 한국에서는 가기 힘든 유럽을 비교적 쉽게 여행해보며, 여유로움을 바탕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상황과 델프트에서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짧으면서도 길었던 175일 간 교환 생활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TU Delft


건축과 항공의 대학

TU Delft


  교환 학생 신청서를 작성할 때, 지원 가능한 대학 목록에 있는 미국, 유럽, 동아시아권 등 유수의 대학들을 보며, 내가 뭘 좋아하고, 교환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전 유럽 쪽으로 가기를 원했었고 비행기를 좋아하고, 건축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유럽 대학 중 항공과가 있으며, 건축 관련해서도 조금 들어볼 수 있는 그런 대학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독립된 'aerospace department'를 두고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았고 항공과가 따로 있어 집중적으로 공부해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지요.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던 곳이 바로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우주항공분야와 건축학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었고, 유럽의 한가운데 위치한 네덜란드의 지리적 특성상 값싸게 여행하기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주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물가도 싸고 영어도 잘 통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1 지망으로 네덜란드 델프트공대를 지목하고 지원서를 제출했었습니다.


  델프트 공과대학은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델프트에 위치해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행정수도인 헤이그와 경제중심지인 로테르담 사이에 있어 대도시와의 접근성도 괜찮으면서 대학도시 특유의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특히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운하와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꾸며놓은 구도심의 모습은 델프트의 상징이지요. 

  또, 여행을 다니며 깨달은 사실이지만, 델프트 공과 대학은 건축학의 발달과 작은 도시에 위치한 부지 덕분에 다른 유럽 대학들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편입니다. 학생들에 대한 복지도 잘 되어 있어 교환학생임에도 다소 복잡할 수 있는 업무들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고, 타국 학생의 비율이 높아 비슷한 처지 및 또래의 친구들을 찾기도 쉽습니다. 낮게 깔린 건물들과 운하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며 다소 심심할 때에는 기차나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만 이동하여 대도시의 생활도 누려볼 수 있습니다.


델프트 공대의 상징, 도서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행하기 좋은 위치


  네덜란드는 유럽 중앙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당장 국경을 접한 나라만 하더라도 독일 프랑스 등이 있고 바다만 건너면 영국이 코앞이죠. 때문에 표만 잘 찾는다면 값싸고 빠르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숙소나 교통편을 예약하는 요령이 없어 어려울 수 있지만, 몇 번 시도하다 보면 몇 시간 안에 3박 4일 일정 정도는 쉽게 짜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유럽에서 보고 싶은 유적이나 공연 등이 많았고 해보고 싶었던 것들도 많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던 적이 있는데요, 리스트를 하나씩 완수해나가면서 짧으면서도 뿌듯한 단기 여행을 자주 할 수 있었습니다. 

  교환 생활 중 가장 희열을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와 내가 여길 와보다니", "이걸 드디어보다니"라는 생각을 할 때였습니다. 유럽은 서양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지리적, 환경적으로도 우리나라와 매우 달라 문화적인 것뿐만 아니더라도 색다른 액티비티, 자연환경 등 다양한 것들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입니다. 빈번한 에어쇼, 저렴한 클래식, 희귀한 액티비티 등 나열하기에는 공백이 부족해 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자신만의 관심사를 잘 생각해보고 계획을 짠다면 짧더라도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자신만의 테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구도심의 분위기


책임 있는 자유

학업 시스템


  교환 '학생'을 온 것이니 학업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아니, 사실 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니까요.

  델프트에서 공부하면서 느꼈던 장단점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업을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시간표나 시험일정에 관계없이 무제한으로 원하는 과목들을 신청할 수 있고, 해당 수업의 자료들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출석도 없으며 시험만 보지 않는다면 듣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기록에도 남지 않습니다. 물론, 각 과목을 통과하기 위한 기준은 까다로운 편으로, 수업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듣고자 하는 과목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학생의 책임이고, 다른 과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 자유롭게 그 수업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제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즉, 관심만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모두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환 학생은 이수 학점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지요? 덕분에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관심 있는 과목을 포기하는 경우는 없어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만 들어볼 수 있는 독특한 과목들을 찾았는데요, 그중 타 분야와 융합한 분야에 흥미를 느꼈고 들어보고 싶은 과목 수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과목을 모두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과 교환학생 특유의 낮은 학업 부담감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기웃거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특정 분야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들 역시 문제없습니다. 다만, '경험'에 더 집중했던 저 같은 경우, 단기간 다양한 분야들을 살펴볼 수 있었던 교환학생이라는 신분과 델프트 공대의 제도가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앙 광장


여유의 가치


  교환을 다녀온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 정말 많이 남습니다. 버리는 시간이 될까 아쉬워 많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게 되지만, 그래도 남는 게 시간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남는 시간, 혹은 여유도 교환 생활의 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보다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뿌듯했는지,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인 것 같습니다.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서 배우는 것들, 학업적으로 깨닫는 것들을 여유 속에서 생각하면 기존에 갖고 있던 고민들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평소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 광장

  네덜란드에 도착해 기숙사 방에 처음 들어가 홀로 남겨졌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백열등으로 비치는 방은 어둑어둑하고, 침대와 깨끗한 책상만 있는 방에 무거운 캐리어 둘과 남겨져 이제 어떡해야 하나, 잠시 막막했었는데요, 그런데 막막함도 잠시 바로 다음날 일어나 바쁘게 돌아다녀보니, 나름대로의 재미도 있고 흥미진진했다지요. 

  교환 6개월은 누군가에게는 갭이어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기회가, 또 누군가에게는 원 없이 여행하거나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부담 없이 꾸며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죠. 그리고 다른 문화권, 생활 방식을 경험해보고 거기에 적응하는 사이 배우는 것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으니 교환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겠습니다만, 확실한 건 제가 자서전을 쓴다면 교환학생을 보냈던 6개월의 분량이 상당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등어




2017.03.16 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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