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 잡담 #교환 여행
두서가 없겠으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기가 싫어 급히 적어놓아본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온가족이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이동했었다. 기억 속의 독일이란 나라는 하얀색 바탕에 빨간 줄이 그려진 ICE라는 멋진 기차가 달리고, 지하철역에서는 나름 기분 좋은 냄새가 나며, 노란색 트램이 달리고(당시 나에게 트램은 센세이션이었다), 갈색 머리의 선생님이 매우 친절하고, 짧은 머리의 터키아저씨가 운영하던 가게의 초코푸딩이 맛있는, 그런 나라였다.
아버지는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노래를 자주 불러주셨고 "독일 사람들이 젊은 이유가 뭐게? 젋은이=절므니=germany이기 때문이지"라는 아재개그의 끝판왕을 자주 선보이셨는데, 당시 나와 동생은 자지러지며 웃었지만 나는 왜 아버지의 개그를 듣고 어머니는 정색 섞인 헛웃음을 보이는 것인지 몰랐었다.
당시 아버지나 어머니나 꽤 중요한 시기였는 데다가 아직 어린 자식 둘을 타지에 데려와서 키우려니 퍽 힘드셨던 모양이다. 베를린 얘기를 꺼내니 첫 마디가 '힘들었지...'. 그럼에도 그 때가 행복했다는 말을 꼭 하시니 조금은 다행이다. 아무튼, 부모가 힘들면 뭐하나, 어린 자식은 아무 것도 모르고 행복했고 그 자식이 지금의 내가 되어 행복한 기억을 안겨준 베를린을 다시 찾으러 나섰다.
교환학생 국가가 독일 바로 옆인 네덜란드라 독일 가는 것이 딱히 부담스럽지는 않다. 3주 전쯤에는 비행기를 타고 뮌헨을 다녀왔었고, 이번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나이트 버스를 타고 함부르크로 가서 하루를 보낸 뒤, 베를린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계획을 세웠다.
글을 쓰는 지금은 베를린 첫날 새벽 1시다. 저녁 6시쯤 베를린 숙소에 도착했고, 바로 숙소를 나서 7시로 예매해놓았던 베를린 필하모니의 공연을 보고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지금이 되었다.
베를린 여행 시작 직전이자 소원이었던 베를린필의 공연을 본 직후인 지금, 왠지 글을 남겨놔야할 것 같다.
베를린 도착하자 마자 한 일.
베필 본진 쳐들어가기.
베를린필 차이콥4번, 바르톡 바협2
산기슭에서 텐트를 치고 도란도란 둘러앉아 모닥불을 지피고 음악을 듣는 모습에서 모티프를 얻어 중앙에 오케스트라를 두고 그 주변을 객석으로 둘러버린 공연장, 베를린 필하모닉.
건물 외부에서 공연장 내부까지 구조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모두 공연단이 중심에 오도록 설계. 이에 건물의 외관은 노란 텐트를 친 모습을 하고 있고 내부는 지휘자가 서 있는 곳을 최저점으로 두고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형태, 무엇보다 연주단 뒤로 객석이 배치되어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베를린필 공연장은 이런 구조의 시초 되시겠다. 파리필하모닉에서 드8을 들을 때도 이런 형태였고 그 땐 무대 뒷자리에 앉았었다. 이젠 많은 공연장들이 이 형태를 사용한다고.
물론 설계 초반 음향 문제로 반대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좌석 골고루 소리가 퍼져나가는 최고의 공연장 중 하나가 되었다. 좌석의 배치, 천장의 무늬와 공중에 매달린 곡면판 하나하나 음향 조율 관련 이유로 설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모닥불을 지펴 주황빛으로 물든 텐트 안, 따뜻한 가운데 다같이 둘러앉아 음악을 듣고 시간을 보낸다는 발상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착하다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아무튼, 그 마음이 너무 마음에 들어 꼭 오고 싶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는데, 깊은 의도와 전문성 앞에 한 없이 모르는 사람일 것만 같아 아쉬우면서도 나중에 또 와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
베를린필의 소리로 그들의 공연장에서 '넓은' 차이콥 들어보기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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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모습 찾으러 온 베를린 여행의 시작.
2016.12.04. Berlin, Germany
베를린 민박집 침대에 누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