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7
30분 글쓰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어쩌다 예전에 쓴 글을 읽어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썼지만 내 딸의 삼육에 구! 할 때 그 자신감이 가득하고 떼쓰기 일보 직전인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은경 작가 탓을 한다는 둥, 감사하다는 둥 이은경 작가가 읽으면 기가 차고 코가 막힐 일이다.
만약 읽으신다면 우아한 댓글을 쓰실 것이 분명하다. "작가님~! 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셨군요? 글을 꾸준히 쓰시다니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참 잘하셨어요." 선생님이셨으니 분명 참 잘했어도 동그라미 도장을 꽝 찍어주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곧 '이 사람 왜 내 탓을 하고 그래? 누구야? 대체 어떤 글을 썼는지 좀 보자. 나 참 궁금하네.' 하며 차오르는 분노를 클릭으로 툭툭, 내 글의 조회수는 올라가고, 점점 나에게 빠져드실 거다. 줄줄 내려가다가 최신 글에 다다르면 비밀 댓글로 남기실 거다. "우리 좀 만나죠?" 대 이은경 작가가 만나자는 댓글을 남기시면 여러 독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팬미팅이 될 테니 나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시고자 비밀 댓글로 남기실 거다.
웃음이 나서 죽겠다. 예전 글을 딸처럼 당당하게 썼다고 시작했는데 그 당당함은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어 저 구름 위로 올라서버렸다. 당최 주체가 안된다. 주최는 행사를 여는 측이고 주체는 처리할 수 없다이므로 주체가 맞다. 주체라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쓴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낯설다. 한자는 당연히 모르고, 스스로 한다고 할 때 주체적이라는 말을 쓰긴 했겠지만 한자어보다 더 쉬운 단어를 쓰는 것이 좋아서 스스로 한다고 더 자주 쓴 것 같다. 내 글을 자주 읽고 있는 강아지 엄마는 이은경 작가랑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하하하 어떻게 대 이은경 작가를 알고 지내느냐는 것처럼 놀람 가득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하는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아니 알지, 나만 알지. 책으로 만나서 나만 혼자 너무 좋아하지.
특히 더 이은경 작가 팬이 된 이유는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에서 과감하게 드러낸 엄마로서의 속 터짐 덕분이다. 시종일관 우아한 말투로 글을 썼다면, 에이 또 선생님 같은 말 하네 하고 덮었을 것이다. 난 책을 덮어버리는 것도 꽤 잘한다. 작가와 내가 인간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장벽은 무너진다. 멀게만 느껴지던 당신이 갑자기 친구가 된 것 같고, 갑자기 동네 언니가 된 것 같고, 밥 사주라 하면 밥 사줄 것 같고, 커피도 사 달라하면 가자! 하며 내 손 끌고 갈 것 같은 느낌인 거다. 큰 딸인 나는 언니들이 그렇게 좋다. 언니들을 사귀면 나한테 자꾸 훈수를 두거나 나를 가르치려고 너는 이래, 너는 좀 그렇다고, 해서 나를 돌아보게 해서 성가시기도 하다. 자기 말을 무조건 따르면 좋겠다 하고 은근히 바라기도 하고, 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해놓곤 말하면 안 된다고 하고, 어른들을 모시는 느낌이다.
언니라는 존재는 좋지만 싫은 점도 있을 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좀 삐뚤어지는 거다. 언니가 하는 말에 고분고분하기도 하고, 싫다고 떼쓰기도 하고, 내 맘대로 한다고 마구잡이로 막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 언니들은 약간 약이 오르는 듯, 화가 나는 듯, 당황하지만 애 달래듯 나를 달래주거나, 오구오구 알겠어 알겠어하며 내 말을 들어준다. 오구? 하고 물으면 45가 나와야 하는데 딸내미 입에선 "오구오구~~~~"가 미소와 함께 나온다. 아무튼 그 오구오구 느낌으로 내 편이 된다.
이은경 작가가 나보다 언니다. 나보다 어른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래서 일단 나는 기댄다. 나의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게 이 언니한테 들러붙었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나의 글 쓰는 삶을 위해서 딱 붙어버렸다. 싫다 해도 할 수 없어요. 안 떨어질 거거든요. 이은경 작가가 쓴 책을 예전에도 꽤 훑어봤었는데 그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제목이 매뉴얼 같은 책이 많았고, 어쩐지 얌전모드로, 우아한 모드로 쓴 글들이어서 와닿지 않았다. 당신은 우아하고 나는 우왁스럽고, 나랑 안 맞아요 했다. 이윤경 작가의 10분 메모 책을 보니 글을 쓰다 보면 점점 자신이 드러나는 글을 쓰게 된다고 했다. 사실 나도 그런 현상을 겪고 있어서 적잖이 당황스럽고 계속 이렇게 내 이야기를 써도 되나 궁금했는데, 그게 과정이라 하니 마음 놓고 그냥 쓴다. 이은경 작가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나 보다. 다정한 관찰자에서 한 번 텐션을 확 끌어올린 느낌이고 다음 책에서 비슷한 텐션 또는 그 이상이 나올 것만 같다. 뭐가 됐든 좋다. 우아하게만 쓰지 말아 주세요 ㅋㅋㅋㅋㅋ 공문에 쓰는 문체는 절대 금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