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이 답이다
둘째 아들 강이는 직장 생활에 매우 만족을 한다.
청년도약계좌에 자동 납입되는 돈을 빼면 월급은 보통의 직장인처럼 점만 찍고 스쳐지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통장에 남게 된다.
자기의 노력으로 번 돈을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 버린다.
정말 부러운 인생이다.
아들은 건강을 위한 적당한 운동을 찾기 위해 나름 고심을 하였고,
직업상 듣게 되는 PNF교육(이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에서 배운 것처럼 다리를 3차원 각도에서 움직여 대각선 방향으로 다리를 뻗는 운동으로 인라인 스케이트 타기를 점찍었다.
수많은 검색과 고뇌 속에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전문점에 가서 무려 50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번쩍거리는 인라인스케이트를 구매했다.
4개의 바퀴보다 조작이 어려워 난이도 높은 바퀴 3개 달린 스케이트로 결정한 이유를 물으니
‘해보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했단다.
주말 오후 스케이트를 신고 집 바로 옆에 있는 중앙공원까지 가서 즐긴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 하였다.
집사람은 극구 만류했다.
‘스케이트는 들고 가서 타고, 집에 올 때 벗어서 들고 오렴’
부모의 말을 쉽게 따르는 아들은 흔하지 않다.
아들은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다.
소중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상기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
한참 뒤 아들은 큰 깨달음을 얻으며 돌아왔다.
아들의 첫마디는 바로
‘엄마 말대로 할 걸’
우리 집은 산 정상 밑 아파트다.
산을 깎아 높이가 다른 4개의 평평한 공간에 6개 동이 나누어 위치해 있는데,
우리 동은 아파트 정문에서 계단을 두 번 올라야 한다.
정문에서 올라올 때 오른쪽은 계단으로, 왼쪽은 오르막길로 조성되 있다.
계단을 피한다면 가파른 오르막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인라인을 신은 아들은 어두웠던 세상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은 상태로 계단을 내려가고 비탈진 내리막길을 지나 공원까지 가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한 운동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올 때도 신고 걸어 올 신발은 없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돌아와야 한다.
내리막 비탈길은 다시 오르막길로 변신해 아들에게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아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거의 못 탄다고 보면 된다.
초등학교 때 잠시 타본 경험이 전부였다.
인라인 뿐 아니라
당해본 경험이 적은 둘째는
가리개로 눈 옆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아직 주위가 잘 보이지않는 세상살이의 애송이다.
서양 영화 ‘메트릭스’ 에선 간단하게 ‘알약’을 먹으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진실을 보게 되지만, 되돌아 갈 수 없는 빨간약과
지금까지 평온했던 일상으로 되돌아가지만 진실은 볼 수 없는 파란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주인공 '네오'는 빨간약을 선택하여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 ‘추노’에선 ‘지독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노비를 쫓는 추노꾼에서 입장이 바뀌어 관군에 쫓기는 신세가 된 ‘천지호’와 ‘대길’
‘천지호’는 죽기 직전 ‘대길’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길 : 겪을 만큼 겪었수다. 세상사.
천지호 : 세상을 겪어봐야 아냐? 당해봐야 아는 게야.
엄마의 잔소리는 주위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않는다.
‘천지호’는 직접적인 경험으로 얻는 깨달음도 그리 깊지 않다고 얘기한다.
오직 ‘당해본’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내리막길이나 계단을 10년째 겪고 있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수많은 검색과 고뇌의 과정을 통해 선택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는 순간
빨간약을 먹고 난 후의 '네오'처럼 세상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다르게 보이는 세상은 이미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일상 겪었던 계단은 가시밭길로 변해있었고, 비탈진 내리막길은 목숨의 위험을 경고한다.
둘째는 당해보지 않았기에 스케이트로 변화될 세상을 보지 못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라인 스케이트는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한번 당해 보았기에 두 번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둘째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을 신나고 빠르게 누빌 것을 믿는다.
지금껏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며 해결해 온 관록이 있기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초보자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는 것과 같다.
속도와 성능이 다른 스케이트를 신고 함께 먼길을 가는 것이라 위태롭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밧줄로 묶여 있기에 한명이 넘어지면 같이 넘어진다.
서로의 계단과 비탈길은 존재만 어렴풋이 느껴질 뿐
당해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고, 감당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모든 프로들이 초보자의 시기를 거치듯
결혼을 한 기혼이든 아님 혼자만의 싱글이든
빨간약을 먹고 난 세상이 어떠하든
버텨낸 시간이 당신을 평화의 바다로 데려다 주리라 믿는다.
이미 난 늦었어 라는 변명을 하기엔
운좋게도 인생은 충분히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