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엔 인생이 좀 길다?

흐르는 강물처럼 돌아갈 수 없는 인생

by 조용히정진

‘행복하다’를 입에 달고 사는 둘째아들.

캥거루족임을 즐거워하며 ‘캥걸, 캥걸’ 노래를 부른다.


서울의 비싼 집값에 밀려들어온 사람들로 동네는 북적거리지만,

경기도 외곽지역은 젊은이가 다닐만한 직장은 부족한 곳이다.

각기 전문분야 기술을 익혔기에, 취업 빙하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은 각각 20분 내외 출퇴근 거리의 집 주변 회사에 다닌다.


엄마아빠와 함께 사니 별도의 돈이 들 이유가 없다.

본인의 월급은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이다.

수염을 없애기 위한 레이저제모에 수십만원을 들이고, 각종 게임기기와 게임 타이틀이 거실장 서랍 여러곳을 가득 채운다.

50만원이나 하는 타지도 않을 인라인 스케이트도 부담없이 구매하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 부부도 거실에서 테니스를 칠수 있고, 티비 앞에서 땀흘리게 달리며 모험을 떠날 수도 있다.

나같아도 행복하다고 매일 노래를 부를성 싶다.


이런 삶이 만족스러우면 결혼에 대해 회의적일 만도 한데, 요즘 젊은이 답지 않게 결혼은 하겠다고 노래를 부른다.

아이도 2명 낳고자 한다.

엄마아빠와 함께 살면서 결혼의 단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이 보이고 느껴졌나 보다.

아이들 앞에서는 언성을 높여 싸워본 적이 거의 없고, 집안의 어려운 일은 가급적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현실적인 압박에 정신줄을 놓을 때에도 가급적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 기를 썼다.

그 덕분인지 아들들은 결혼과 출산의 의미와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아직 잘 모른다.

결코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큰아들은 제대 후 기특하게도 면접을 보자마자 바로 합격을 했다.
너무 기뻤다.

온 동네에 자랑을 하고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입사한 며칠 뒤 주말 축하 파티를 열려고 했다.

그때는 아들이 차가 없었기에 픽업하러 우리 부부는 회사까지 차를 몰고 갔다.

차에 타서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아빠.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인가?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분노가 차올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나름대로 퇴사하고자 하는 논리를 열심히 피력했다.
스물일곱 앳된 나이, 아들이 가진 경험치로 나름의 판단을 한 것이다.
차는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 삼겹살 파티를 시작했다.
퇴사는 퇴사고 먹는 건 먹어야 되니까.

식사를 하며 소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인생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룰이 있고, 넌 지금 동생이 안정적인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아들의 요지는 본인의 중국어 실력과 무역 지식에 대한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들은 고3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무역을 전공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좀 더 공부를 한 뒤에 회사 생활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얘기한다.

내가 아들만한 시절 했던 것과 같은 고민을 이제 하기 시작하는구나.
'알고 난 뒤 행동할 것인가, 일단 행동을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깨달을 것인가'

30년이 지난 지금 내린 결론은 알고 난 뒤 행동하려면 많이 늦어 질 수 있고, 잘못하면 평생 행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을 땐 일단 저질러 봐야 한다.

진행하면서 느끼고, 배우면서 수정하고, 그러면서 양이 어느 정도 쌓이면 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전 양을 쌓는 행동을 멈추면, reset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아들에게 이야기를 풀어서 얘기해 줬다.

지금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회사 업무를 하면서 부딛히면서 업무를 익히고 깨지면서 레벨업해야 된다.
만약 그것이 두려워 시작을 뒤로 미룬다면 상당히 많은 기간이 뒤로 미뤄질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미룸은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처럼 판단은 아들에게 맡겼다.

인생은 각자도생.

다음 날 아들은 퇴사를 생각하며 회사에서 챙겨왔던 슬리퍼를 조용히 다시 가방에 넣어 출근한다.

지금 2년 반차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어에 능통한 사무원으로 성장해서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매년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꿈 많고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돌아가고 싶다.


집사람과 나는 서울역 구내다방 (집사람은 너무 올드해 보인다며 이 사실이 알려지길 꺼려한다.)에서 맞선을 보았다.

서울역에서 학교 안까지 들어가는 52번 좌석버스를 타고 대학 캠퍼스를 구경시켜주고,

다시 서울역으로 버스를 타고 한시간쯤 되돌아올 때

‘이 여자와 결혼 해야겠다’는 결심이 갑자기 솟구쳤다.

결심하던 나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난 이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매주 토요일 내려가 4번의 데이트를 한 뒤 결혼하기로 양가의 승낙을 얻었다.

한달 뒤 세상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고, 행복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상대를 선택하는 행위는 인생 전반을 결정짓는 최고 난이도의 시험이며 승부수다.

이런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낯선 우리는 만난 지 두달 만에 가족이 되었다.


결혼 전 필수적인 선택은 신혼집과 혼수이다.

부모님께서 신혼집을 찾으러 동분서주 하실 때 나는 만화방에서 신간 만화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집사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그렇게 철이 없었다.


만약 결혼을 할 생각이 있다면, 어른이 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쉽지 않다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두 명의 아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고 기르며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먹고 있는 영양제 가짓수를 보면 우리는 한 40년 정도 더 살 것 같다.

혼자 살기에 100세 인생은 좀 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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