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쌓여 내 인생이 된다

양손의 떡, 다 먹고싶다

by 조용히정진

아침에 아이들 출근을 배웅하고 난 뒤 우리 부부는 배고픔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너무 힘들어 참외를 조금 먹긴 했지만.

왜냐하면 낮 12시에 집 근처 무한리필 식당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한된 수입 속에서 맛난 외식은 매우 흥분되는 순간이다.

아내와 나는 무더위 속 불경기에 망해버린, 그래서 본사 직영으로 새 단장해 오픈한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고기를 숯불에 굽고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을 즐겼다.

너무 행복했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는 법.

집에 와서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운전이라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운전중 쉬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버스 맨뒤 긴좌석에 불편하게 누워 잠을 청하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해도 종일 긴장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기에 일과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는 순간 심한 피로가 몰려든다.


운전을 직업으로 삼은 순간부터는 술과의 이별을 각오해야한다.

가끔 마시게 되더라도 낮에 맥주 한잔이라도 하게 되면 그날 하루는 그냥 사라져 버린다.


눈을 뜨니 지금은 새벽 한시.

SF 영화에서처럼 나의 시간이 삭제당한 느낌이다.

5시에는 출근준비를 하고 30분 뒤 집을 나서야 하니 나에게 허락된 자유시간은 4시간.

좀 억울한 느낌이 든다.


아내는 맛난 점심시간을 끝으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나를 깨우기 위해 계속 괴롭힌다.

아... 힘들다.

삶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위안을 주는 익숙한 손길이 가끔 흉기로 변해 나의 옆구리를 쿡쿡 쑤시며 편안한 잠자리를 방해한다.

‘또 삐졌지?’

아내의 목소리가 잠결에 어른거린다.

나도 모르게 아내의 손길에 미약한 저항을 했나보다.


즐거운 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나?

많이 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방법.

공부를 적게 하고도 성적은 계속 올라가거나

아픔 없이 사랑의 달콤한 부분만 취할 수 있는 방법 등등.


우리 속담에 ‘양손의 떡’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알콩달콩 함께 살고픈 건 근본적인 욕망과 관련된 기쁨이다.

또한 간섭과 갈등 없는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 역시 포기하기 어렵다.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양손의 떡을 다 먹으려 하는 순간 사고는 터지게 마련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예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뱀파이어 헌터 D’에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의 사랑이 나온다.

‘뱀파이어 마이어 링크’와 ‘인간 여인 샤를로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사랑을 위해 도피하는 연인을 추적하는 뱀파이어 헌터 D.
유투브로 정신없이 빠져 든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시 한번 보고싶은 명작이다.


뱀파이어 헌터 D는 연인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짧게 동행하며 각각 1번씩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 현상금 사냥꾼 ‘레일라’의 장례식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쓸쓸한 죽음을 예상했기에 레일라는 생전에 D에게 ‘우리 중 누가 먼저 죽으면 상대의 무덤에 꽃을 바치자’ 라는 농담을 건냈고, 헌터 D는 이를 지키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수많은 가족 속에서 편안히 생을 마감한 레일라의 무덤을 멀리서 지켜보며 자신이 굳이 찾아 올 필요가 없었다는 혼잣말을 하며 떠나는 헌터 D.


얼핏 보기에는 고독한 헌터 D의 삶 보다는 레일라의 선택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장례식에 모인 수많은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그 여인의 평온한 죽음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겠는가?

버텨내온 세월은 오직 평화로운 모습 속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우아한 백조의 수면 아래 발버둥치는 두개의 발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결혼을 결심한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마치 변신로봇처럼 변화무쌍하여 어떤 모습으로도 바뀔 수 있고 시련을 동반하는 아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무수한 노력 속에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

‘불안정한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노력한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각오를 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혼자 걸어가는 길도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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