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다가 분해서 벌떡 일어나 쓰는 글
+ 이 글은 자려고 누웠다가 분함을 참지 못하여 다시 벌떡 일어나 쓰는 글임을 밝힌다.(경솔함 주의)
내가 쓰는 글을 메모나 기록 혹은 끄적임이라고 하지 않고 '글'이라고 표현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며 글 쓰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여전히, 내 주변의 대부분은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몇 년간 내 글을 본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그동안 이곳을 남편한테만 알렸기 때문에 정말이지 몇 년간 내 글을 본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내 글에 핵심이 없으며 미사여구만 많아 쓸데없이 길다고 했다. 재미가 없다고까진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의 유일한 독자가 남편이었는데, 처음 몇 편을 읽어보더니 "화장실에서 읽기엔 괜찮네."라는 평을 던지곤 전혀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글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편과 아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나 역시 내 글에 대해선 남편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가족조차 보지 않는 글을 쓰면서도 자꾸만 뭔가를 쓰려하는 내가 때때로 수치스러웠다. 잘 쓰고 싶은데, 쓰고 싶은 글의 모양새도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이런 글만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저, 글 쓰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샤이샤이),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조금 더 살펴보니 나는, 잘 쓰지 못하는 내가 창피하여 글 쓰는 나를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몇 차례 밝혔듯이 그런 내게 글 친구가 생겼다. 여름에 인사이동이 있었고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발령이 난 그 친구는 첫날부터 밝혔다.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데 겸직허가 신청을 해도 될까요?"
나는 그 친구의 소설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 친구한테 반하고 만다. 글을 쓰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글에 대한 진중함이 몹시도 맘에 든 것이다. 그 친구는 웹소설을 쓰고 있으며 로맨스를 좋아하여 사극 로맨스를 쓰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웹소설에 대해서는 귀여니소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처음엔 살짝 실망하기도 했다. 아뿔싸, 웹소설이라니. 그전까지 나는 웹소설이 문학의 세계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겸직허가를 승인하면서 그 친구의 소설을 읽게 되었고, 응? 하고 놀라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 친구 소설 속의 대사까지도 욀 정도로 빠져버려,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고백하고 만다.
실은 나도 글쓰기 좋아해요. 나는 브런치라는 곳에서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그 후 우리는 글 친구가 되었다. 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잘 쓰고 싶은데 제대로 써지지 않을 때 얼마나 (개)짜증 나는지,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이 무언지도 이야기 한다. 내가 써놓은 소설을 그 친구한테 보여주기도 했으며 사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추가 고백까지 하기도 했다.
어제는 출근하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는데 역시나 주차를 하고 있던 그 친구가 나를 발견하곤 내게 달려왔다. 예전에 써놓은 소설인데 보여주려고 들고 왔다며 프린트 뭉치를 내미는데 정말이지 너무너무 기뻤다. 글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이런 기쁨이구나, 생각했다.
오늘도 그 친구는(우리는 심지어 동갑내기다)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글을 써도 성과가 없으니 가족들에게 글 쓰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하기가 좀 뭐 하다 했다. 글을 쓰다 말고 동태탕을 끓이다가 다시 글을 쓰러 간다고 했다. 나 역시 가족들한테(남편한테) 나 지금 글 써야 하니까 잠시 내버려 둬,라는 말을 너무 하고 싶은데 겨우 이런 글이나 쓰면서 시간까지 달라는 말을 하기가 머쓱하여 몰래몰래 짬짬이 쓰던 중이었다. 가끔은 어떤 문장 하나가 떠올라도 그걸 옮길 시간이 없어 '에이, 써봤자 늘 쓰던 문장이고 늘 쓰던 글인데'싶어 그대로 흩어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나도, 나도, 정말이지 나도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그 친구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글이라는 걸 써서 자그마한 성과라도 있다면 당당하게 나 지금 글 써야 해, 라고 할 텐데 그저 혼자 취미생활로 쓰다 보니 떠오르는 문장들이 금세 사라지고 만다. 동태탕을 끓이다 말고 느닷없이 문장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나 말던지. 꼭 그런 무심한 순간에 불쑥 떠올라 나를 초조하게 하는데 그 초조함을 드러내기가 조금은 머쓱한 것이다.
그 친구는 지금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했는데 보라카이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걸로 여행기를 써서 브런치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브런치북 공모전 때문이다. 떨어지겠지. 붙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남편말대로 내 글은 나한테나 재미있는 글이며 남들한테는 가독성 떨어지는 긴 글일 뿐이다. 아마도 여행기는 더욱 그렇겠지. 그렇지만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 브런치북을 만들어 공모에 참여하고 싶다, 떨어진다 해도 괜찮다, 당연히 실망하겠지만 다음엔 소설을 쓸 테다,라는 말을 숨김없이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내게는 아주 큰 한 걸음인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한테 말했다.
나 말이야,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여하고 싶은데 아직 글을 6편밖에 못 썼어. 주말까지 4편을 더 써야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큰 소리로 시작했는데 말하다 보니 부끄러워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브런치북 공모전이 무언지, 당연히 내가 붙을 가능성은 없다는 설명을 할 땐 특히나 더 작아지고 말았다.
남편은 뭐 그런 걸 부탁하냐는 듯 아주 흔쾌히 그러라 했다. 오늘 아들 녀석을 본인이 재울 테니 밤에 쓰라고 했다. 에피소드 4개만 더 쓰면 되는 거지?라고 묻더니 오늘 쓰면 되겠네, 라고 했다.
애 재우고 한두 시간 만에 쓸 수 있는 거라면 남편한테 그런 계획을 털어놓지도, 나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을 텐데 남편은 내 말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역시...... 글 같은 거 쓰고 싶다는 말을 남한테 한 것이 멍청한 짓이었다, 싶어 내내 후회하던 저녁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들이 주말에 친구를 데려와서 하룻밤 자면 안 되냐고 묻기에 이번 주말엔 엄마가 조용히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너야말로 엄마를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라고 했다. 남편이 내게 다가오더니 오늘 내가 애를 재울 테니 그때 쓰면 되잖아, 그거면 안돼? 하는데, 내가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글이라고는 개코도 모르는 이 무식한 인간아! 책 한 권을 안 보고, 글 한 단락도 안 써 보니 뭘 모르지? 맨날 유튜브만 보면서 낄낄거리기만 하니 글 한편이 뭐 자판기처럼 뚝딱 나오는 줄 아나 보지?"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는데!!! 그런 소리 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해서 애는 내가 재우겠다, 브런치북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말라,라고 말하곤 아들 녀석을 재우러 들어가 버렸다. 아들이 잠든 소리가 나고, 잠시 후엔 책 한 권도 안 읽고 유튜브만 보는 무식한 인간이(나 지금 많이 화났다) 자러 들어오길래 씩씩 거리며 나와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내가 말이지. 글 같은 거 써서 뭐 대단한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는데 말이지. 실은 그럴 재주도 없고, 남편 말대로 내 글은 아주 아주 허세에 절어서 미사여구만 많고 길기만 한 후진 글이지만 말이지. 언젠가는 꼭 이 글로 돈을 10,000원 이상은 벌어서 단 1원(10원 아님,1원임)도 남편한테는 쓰지 않을 거라고, 굳게 굳게 다짐하기 위해 바들바들 떨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동태탕 끓이다 말고 글 쓰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냔 말이다!!!(버럭)
휴우,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내일은 친구를 만나 남편 욕을 좀 더 할 생각이다.
++ 그렇지만, 나는 우리 남편을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 진짜 더럽게 재수 없지만 말이다. 좀따 자러 가서 발로 차버릴 생각이다. 어차피 잠들었을 테니 알 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