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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Oct 26. 2024

미완에서 미완으로 돌아오는 길

그냥 막 찍어도 진짜로 색이 이렇다
하늘과 같은 바다색
열대어가 많던 포인트, 헤난 리젠시 정문에서 바다쪽으로 100미터 가량 헤엄쳐가면 된다. 가다보면 열대어 천국


작년에 화이트비치를 처음 봤을  그저 "!" 했다. ~~ 어얿고,  ~~ 이일게 펼쳐진 거대한 해변과 난생처음 보는 빛깔의 바다 앞에서 한참 동안 말문이 막힌  멈춰 있었다. 문자 그대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는데  표현 또한 머리 구석에서 아주 간신히 찾아내어 끄집어 올린 것으로 꿈인가 싶었던 비현실적인 빛과 색채를 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수가 없었다. 내내 멍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하다 여행이 끝나버렸기에  미완의 감각 속으로 여전한 환상과 짙은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갔다. 그곳은 내가 가진 언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없는 , 가보지 못하여 알지도 못하는 낙원 혹은 천국 같은 곳처럼 여겨졌다.  


다시 찾은 보라카이는 이번에도 내가 가진 언어를 무용하게 만들었기에 모든 감각을 열어둔 채 그저 그곳을 느끼는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보라카이 여행 4일째가 되는 날. 몹쓸 데자뷔처럼 아들에게선 또 작년과 비슷한 아니, 그때보다 더 심해진 듯한 피부질환이 나타났다. 한쪽 뺨부터 붉게 부풀어 오르며 발진이 일어나더니 이내 전체 얼굴로 퍼져갔으며 목덜미, 팔, 배, 다리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결코 작년과 같은 일(아들의 썬번)이 없게 하겠다며 선크림을 종류별로 잔뜩 사들고 떠난 여행이었다. 보홀에서 그렇게 많은 물놀이를 했었지만 무탈했기에 살짝 방심했던 탓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건 썬번이 아니라 그저 열대 기후에 약한 알레르기였던 걸까. 아들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 갔기에 다시 또 병원을 찾았다. 엉성한 영어로 우리의 여행과 아들의 증상을 설명했고 알레르기약 처방을 받았으며 다시금 태양을 피해 숨어들었다. 숨었던 장소가 페어웨이즈에서 헤난가든으로 바뀌었을 뿐 작년 여행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던 중이었다.  


미완이 만들어낸 환상인 건지, 그런 환상이 만들어낸 괜한 그리움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벅참은 대체 무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보라카이를 어떻게든 내가 가진 언어로 담아내며 느끼고 싶어 다시 찾았던 것인데, 올 때마다 병원을 가야 하고 아들의 투정을 들어야 하며 일정의 절반은 컵라면을 먹으며 숙소에 처박혀 있구나 생각하니 점점 화가 솟구쳤다. 그때 못 했던 것들을 이번에는 꼭 하고야 말겠다며 버킷 리스트를 잔뜩 품고 왔는데 또 이렇게 숙소 발코니에서 다른 이들의 웃음소리만 듣고 있다니. 게다가 헤난가든은 와이파이가 잘 되지 않았다. 유튜브 시청이나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아들은 최악의 숙소, 최악의 여행이라며 끊임없이 투덜거렸고 점점 화가 솟구치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애당초 발화점이 아주 낮았던 분노였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인데. 여기까지 와서 하루종일 숙소에만 있는 것이 대체 누구 때문인데. 누가 누구한테 지금 최악의 여행이라는 건지. 결국 나도 같이 짜증을 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더니 아픈 아이 투정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 엄마라며 잔뜩 날이 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프기 전에도 예약한 투어나 스파를 하기 싫어하며 숙소에서 게임만 하고 싶어 했기에 때때로 우린 아들만 숙소에 둔 채 나가곤 했었다. 왜 이제 와서 온 가족이 모두 이곳에 모여 앉아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엉망진창이어서 나는 그만 엉엉 울음이 터져 나왔다. 또 왜 이렇게 돼버린 거지? 나는 이렇게... 못나고 옹졸한데 고작 이런 나로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나는 보라카이가 너무 좋은데, 이 정도면 보라카이가 나를 싫어하는 거였다.  


여기까지 와서 또! 또! 또! 우리는 숙소에만 있다고.

발코니에서 남들 노는 것만 보고 있고 하늘도 발코니에서만 보고 있다고.

나도 사진도 많이 찍고 싶고 패들보드도 타고 싶다고.

햇빛 피해 가며 숨어서 컵라면이나 먹는 거 말고 게리스그릴에 가고 싶다고.  

나이가 사십이 훌쩍 넘었는데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나도 사진 찍고 싶다고 말하는 아내가 남편 눈엔 얼마나 못 나 보였을까.


우리는 그렇게 이틀을 내내 다투기만 했다. 보라카이가 너무 싫었고, 그럼에도 또 보라카이가 너무 좋아서 계속 화가 났다. 여행이 이렇게 끝나버리면 돌아가서도 이곳에 사로잡혀 있겠지. 알 수 없는 열병을 앓듯 영문도 모른 채 또 끙끙 대겠지.

그러다가 떠나기 전날 아침에 남편이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패들보드 타 볼래? 사진 찍어 줄게.

우리 내일 아침에 떠나는데? 이제야? 눈알이 빠지도록 남편 얼굴을 노려보았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아들이 아픈데도, 왜 나까지 놀지도 못하냐며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어미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지. 아들 또한 저라고 저렇게 아프고 싶을까. 여기까지 와서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숙소에서 엄마랑 싸우기만 할 땐 얼마나 속상할까. 어쩌면 아들한테 보라카이는 진짜 최악의 여행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못 이기는 척 남편을 따라 바다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패들보드를 타라며 호객꾼들이 손짓을 했다. 30분에 400페소라기에 못 이기는 척 패들보드 위에 올라탔다. 아들만 숙소에 두고 나왔기에 어차피 30분을 온전히 탈 수도 없었다. 그저 바닷물 위에 섰을 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궁금했던 거다. 패들보드 아래의 물을 발로 누르며 배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을 때의 느낌, 노를 저으며 나아갈 때의 느낌이 궁금했다. 아주 잠시라도 괜찮았다. 노가 바닷물을 밀면서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알고 싶었다. 넘어지지 않고 버텨내면서 노를 저어 바닷물을 가를 때 헤엄치듯 움직이는 빛이 보고 싶었던 거였다.


남편은 내가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인지(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 어느 때보다 잔뜩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패들보드 위에 서서 계속 기우뚱거리기만 했으면서도 "자기야, 너무 재밌어" 외치며 신나 했다. 나의 모자람과 어리석음과 이기심을 모르는 척 눈감아주며 패들보드 타러 나가자 했던 남편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너무 재밌다는 말만 반복했다.

노를 저어 한참을 가니(실은, 한참까진 아니고... 헤난리젠시 정문에서 80~100m가량 바다 쪽으로 가다 보니) 열대어들이 잔뜩 있었다. 패들보드를 타면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다던 호객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이빙을 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산호초를 키우기 위한 곳인지, 물고기 밥을 주는 곳인지 인공 구조물이 잔뜩 있었으며 그 주변에 자그마한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자기야, 여기 대박이야. 약간(아주 살짝 약간) 나팔링 같아." 스노클을 입에 물고선 으헝헝헝 이야기했다. 그 안에서 어린 산호초와 물고기들이 자라고 있었다. 앞으로도 무럭무럭 잘 자라 바닷속을 밀림처럼 만들어가겠지. 아직은 머나먼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그리 되겠지. 그런 생각들은 하다 보니 내가 보라카이를 향해 품었던 미완의 감각들이 어쩌면 당연한 듯했다. 어제의 하늘빛과 오늘의 하늘빛이 다르며 바다는 하늘빛을 품은 채 성장하며 변해가고 있다. 어째서 완결 내려했던 걸까.

나는 끝내 보라카이를 담아낼 만한 나의 언어를 찾지 못했다. 다만, 떠나기 전날, 자라는 중인 산호초와 열대어 떼를 발견했으며 미련 없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잘 자라고 있어야 해. 능숙한 다이버가 되어 다음에 또 올게. 같이 헤엄치자.


푸르고 거대한 일렁임, 잔잔하고 느린 파도.

어쩌면, 미완이어서 더 좋을 일이었다.


돌아올 땐 세부에서 비행기를 탔다. 보라카이-카티클란-세부-부산으로 마무리되는 여정이었다.

세부의 어느 라운지에서 마지막 산미구엘을 마셨다.
집으로 돌아가던 새벽의 세부공항

언젠가 남편과의 신혼여행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다시 밤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구름 위로 반사된 달빛의 농도를 궁금해하며 하늘 위에서 잠들었다가 비행기 날개 끝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함께 보는 꿈을 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잠시 졸다 깼더니 아침 해가 뜨고 있어 그 꿈이 떠올랐다. 여행의 마지막 장면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미완이며 우리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 역시 각자의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 그 어딘가를 방황하며 여전히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저 우리의 목적지가 같기를 바랄 뿐이다.


보라카이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환상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섬은 잠시 잊고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구나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수만 가지의 미완이 가득한 곳에서 나만의 보라카이 섬을 끌어안은 채 일상 속으로 잠겨들 차례였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 아주 다행이었다.


+ 아들의 피부병은 집에 오자마자 곧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햇빛 알레르기 혹은 긴 여행으로 약해진 체력과 열대기후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비타민과 미리 처방받는 항생제는 필수인 듯.


++ 노란색 비키니는 끝내 입지 못 했다. 여행 막바지에 입어야지 생각했는데 4일 정도를 아들이 아픈 바람에 숙소에만 있었고 남편과는 거세게 다투기만 했다. 애당초 남편한테 나를 좀 귀엽게 봐달라는 바람으로 준비했던 수영복이라 도무지 입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의 노란 수영복 또한 미완으로 남겨둔다.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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