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혹은 나는 어떤 요일일까 생각해 본 적 있는지.
직장에서의 포지션을 요일에 비유하자면 월화수목금토일 중 '화요일'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건 지난 9월에 '주간 일기 챌린지'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주간 일기를 꼬박꼬박 쓰기 위해 월화수목금토일을 좀 더 촘촘하게 들여다보니 언제나 화요일이 소외되고 있었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금, 토, 일에 몰려 있지만 월, 수, 목도 나름의 이야기가 없진 않다.
월요일은 피곤하고 바쁘다는 하소연이 있다. ('유난히 정신없고 바쁘고 빡치고 피곤하다'라는 말의 대전제로는 '월요일이라서'가 적절하다. 화요일이라서 유난히 피곤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월요일은 '응? 누가 내 얘기를 다른 사람 얘기하듯 하네?'라고 할 테고, 화요일은 '응? 갑분나?' 하며 서로 마주 보고 놀랄 테다.)
수요일은 한 주의 중간쯤이니까 잠시 되찾은 여유가 있고 목요일은 전쟁 같은 한 주가 끝나간다는 희망이 있다.
모든 요일에서 생략되는 건 언제나 화요일이다. 월요일을 버텨낸 화요일은 이미 충분히 너덜거리고 있는데 아직 금요일까진 머나멀게 느껴져 그저 지루하고 고단하기만 하다.
내가 3개월간 꼬박꼬박 쓴 주간 일기 속에서 화요일에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은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북상했던 날 뿐이다. 그저 그런 비가 왔다면 화요일은 또 생략당했겠지만 역대급 태풍인 힌남노가 북상하는 바람에 화요일에도 간신히 이야기가 생겼다. 하지만 이런 태풍이 또 언제 올지......
나의 화요일은 대부분 야근이다. 바쁘고 정신없거나 그저 꾸역꾸역 버텨낼 뿐이라 그날은 거짓말처럼 증발하고 없다. 무탈한 일주일을 위해 화요일도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화요일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화요일 속에 무명 배우 1,2,3.... 들의 씬이 쌓이고 쌓여 끝내 이름도 없이 사라진다.
빨주노초파남보 혹은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외듯 그냥 월화수목금토일을 언급할 때 스치듯 불릴 뿐 화요일을 따로 찾거나 콕 찍어 기억하진 않는다.
주간 일기를 쓰며 요일들에 대해 밀도 있게 생각하다 보니 직장에서의 나의 포지션과 가장 닮은 것은 화요일이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계약이다. 각종 공사나 물품 계약을 하고 있다. 어제도 전문건설협회에서 민원전화가 왔고 종합공사 업체에서도 민원 전화가 왔다. 관내 기관에서 공고를 잘못 올리기라도 하면 화가 잔뜩 난 민원인의 전화가 나에게 온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이미 재미없고 지겹다. 그래서요?라고 누가 물을까 봐 겁난다. 이어질 이야기는 훨씬 더 재미없고 졸리니까.
어쨌든 화요일을 맡고 있는 나는 잘해봐야 본전인 일을 한 주 내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사실 누구도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악성 민원이 생긴다거나 의회에서 질의가 있을 때 잠시 죄인이 된 심정으로 불려 다닐 뿐이다. 계약 담당자를 떠올리게 될 때는 사고가 생겼을 때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긴 하다.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켜야 정상인 거다.
자꾸 이러면 내가 진짜 기억에 남는 큰 사고 하나 쳐 준다?!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하며 결재판을 들고 나타날라치면 듣기도 전에 주름부터 세우며 좁아졌던 미간 때문에 그래선 안 될 것 같다.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북상해버려 마침내 이야기가 생겼던 화요일과 이런 것조차 비슷하여 화요일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화요일은 어떤 마음일까.
가만히 있어도 고단함을 위로해주는 월요일이 부러울까.
가만히 있어도 다들 환영해주는 금요일이 부러울 지도.
화요일은 역시나 좀 쓸쓸하겠다, 싶어 '나의 화요일'을 더 이상 홀대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한 달 전의 일이다.
"이봐, 나는 정말로 힘들단 말이야!!" 하는 월요일의 외침도, "늘 즐겁진 않다고! 억지 텐션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애쓰는데?"라는 금요일의 투덜거림도 일단은 모른 척해본다. 나까지 화요일에게 인색하고 싶진 않으니까.
화요일은 특히 일찍 출근한다.
7시 전에 출근해서 하루의 여유와 친절을 준비해 본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메일도 미리 확인하고 공문도 일찍 처리하려 한다.
내가 화요일을 맡고 있는 동안은 나의 화요일들에겐 무조건 이름 하나씩 붙여줄 생각이다.
지난주는 예쁜 귤나무가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귤나무와 함께 한 화요일. 상큼했다.
이번 주는 지난봄에 패키지가 예뻐서 그저 소장용으로 샀던 아이섀도를 바를 거다. 마스크를 쓴 후로 화장은 벗었지만 화요일이니까 특별히 민트색 펄을 발라볼 테다.
민트 펄과 함께 한 화요일. 반짝일 테지.
다음 주는 어떤 이름으로 화요일을 채울까.
예쁜 케이크를 먹을까. 가장 좋아하는 겨울 코트를 꺼내 입을까. 퇴근 후 남편과 와인을 나눠 마실까.
이런 생각들을 하니 조금 즐겁고 설렌다.
나의 화요일이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가만히 바라본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나의 화요일이 더 이상은 증발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순간, 모든 하루, 모든 요일들이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찰나에도 늘 다감하고 다정하길 기도하며 응원해본다.
행복하자,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 난 원래 의식의 흐름대로 휘리릭 쓰지만 이 글은 일주일 동안 썼다. 월화수목금토일의 마음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생각하며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모든 요일들의 마음들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화요일 오전 9시. 민트 펄을 촤르르 바른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발행' 버튼을 누를 계획이다. 신난다!
+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다음엔 수요일을 맡고 싶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역시 이 노래 때문인 건지 귀여운 아가씨 같아서 너무 사랑스럽다, 수요일이. (아! 이 얘기, 화요일에겐 비밀이닷. 쉿!!)
+ 나에게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울리기만 해도 맹렬히 미움받고 있는 내 전화벨의 마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려 한다. 어쩔 수 없는 문과인이라 '**이의 마음'들에 대해 써 보고 싶다.
부서져라 두드려지는 키보드의 마음, 계산기의 마음
한없이 높아지길 바라는 파티션의 마음, 죄 없이 (쳐)맞고 있는 프린트기의 마음 등등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많은 마음들.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