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Biochemist Sep 19. 2024

무척추동물 해부 이야기

어느 석사학생의 해부동물 구하기 대장정


대학원 석사 시절, 세계 올림피아드 출전 학생들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하는데 우리 실험실에서 해부 과목을 맡아서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해본 적 없는 온갖 동물 해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조개, 오징어, 귀뚜라미, 새우, 성게 등등)은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기출문제 중 구하기 힘든 것이 두 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지렁이랑 ㅂㅋ벌레.


"교수님, 지렁이랑 ㅂㅋ벌레는 안 파는데요?"

"OO아 내가 뭐라고 했지?"

"안되면 되게 하라요?"

"그렇지!"


일단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사업장과 낚시 미끼 파는 데를 다 돌아봤으나 우리가 비온 다음날 흔히 길가에서 보는 꿈틀대는 그런 큼지막한 지렁이는 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비가 오는 날마다 꿈틀대는 지렁이를 잡으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비 오는 날마다 빗물에 길 잃은 지렁이를 찾아 캠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런 랜덤 잡기로는 큰 거 3마리와 약간 작은 것이 전부였다. 작은 것을 받고 시무룩해하던 학생은 덤.


그리고 대망의 ㅂㅋ 벌레...


ㅂㅋ 벌레는 다행히도 국립보건원에 연구하시는 박사님이 있어서 분양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석사 나부랭이에게 박사님은 독일 바퀴와 미국바퀴의 차이점도 알려주셨다. (키우기 힘든데 위에 분들이 몰라준다는 하소연은 덤)


문제는 예비 해부실험부터 나타났다. 보통 곤충은 에테르가 묻은 솜을 넣은 곳에 넣으면 질식되어 마취가 되는데 ㅂㅋ 벌레는 에테르를 무슨 바닥이 흥건하게 붓기 전에는 마취가 되지 않았던 것. 꺼내자마자 마취에서 깨어나길래 머리를 자르고 배를 열었는데 해부판에 사지를 핀으로 묶어놨는데도 30분간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었다. 아...


결국 학생들에게 해부실험은 포르말린에 익사시킨 녀석들로 진행했다. 호기롭게 이런 죽은 것 말고 살아있는 걸 해보겠다는 학생이 있어서 디카로 찍어놨던 윗몸일으키기 동영상을 보여주었더니 빠르게 수긍했다.


지금도 ㅂㅋ 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아직도 올림피아드 나가는 친구들은 어디선가 ㅂㅋ을 해부하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