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말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 Aug 28. 2021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인류 역사의 통찰을 책한 권에담다.

 호모 사피엔스. 학창 시절 역사나 사회시간에 들어보았던 단어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쓴 이 책 '사피엔스'는 지금 우리 인류의 '종'인 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번역서 기준으로 6백 페이지를 넘는 이 두꺼운 책은 진화한 유인원인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이나 다른 진화한 유인원과 무엇이 달랐을까? 하는 물음부터 시작해서, 인공지능을 위해 일해야 할지 모르는 지금의 시대까지 수십만 년에 걸쳐 지구 상에서 벌어졌던 일 들에 본인의 통찰을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해줍니다.


 6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목요연'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으나 수십만 년의 역사와 자신의 통찰을 이 정도 분량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일목 요연한 것이 아닐까요. 실제 이 책에서 '사피엔스' 종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사고력과 상상력이 나오는데, 육체적인 능력이 더욱 뛰어났던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가득 채우게 된 것부터,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는 지금의 시기까지를 보면, 사피엔스 종이 수십만 년 동안 끊임없이 머리를 어떻게 써왔는지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각종 개념을 만들면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왔습니다. 정말 신이 계시는지 여부를 떠나,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통제했고, 유한회사라는 개념을 통해 경제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잡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과학기술과 정치 경제 시스템이 만나서 급속적인 발전을 이룬 결과 지금의 현대사회까지 오게 된 것이죠.


 유발 하라리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의 글을 차근차근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비록 이번에 읽은 책은 번역서였지만,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원서로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책으로 만난 유발 하라리는 두꺼운 책이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게,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책에서 바라본 인류에 대한 시각이 약간 지구에서 벗어나 큰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신념이나 성향에 따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나, 불편한 내용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십만 년에 대한 글을 쓰는데 어떻게 정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닌 것을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쓸 수 있을까요. 저는 글의 내용을 떠나서 이 정도의 통찰을 가질 수 있는 그의 식견과 공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십만 년의 선사시대 벌어졌던 주요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 사료가 많이 없다 보니 인류가 버텨온 시간에 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역사가 기록된 이후에 대해서는 또 반대로 사료가 넘쳐나다 보니, 특정 지역이나 이벤트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야에서 사피엔스가 걸어온 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전 세계적 데이터 위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이 개인적으로 저는 좋더군요. 그가 책에서 중간에 적기도 했지만, 인간은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는 공감을 잘 못하는 반면, 특정 소수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쉽게 공감합니다. 전장에서 사그라진 수많은 병사들과, 기근으로 사라진 수많은 평민, 노비들의 숫자에 대해서는 '그런가 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일화는 이름까지 기억하고, 그 감정까지 공유하니 말입니다. 


 글 마무리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살며시 꺼냅니다. 인간이 진짜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토끼를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사람보다 뛰어나게 '생각'하는 기계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탄생했던 그 시기로 돌아가 한 걸음씩 복기를 해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좀 더 찾아봐야겠네요. 짬 나는 대로 탐독했던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10. 한국은 행복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처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며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46.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중략)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48. 역사학 교수들이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해 내화할 것 같은가? (중략)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적발한 교수, 학과장과 학장 사이의 불화, 동료 중 하나가 연구기금으로 렉서스 자동차를 샀다는 루머 등을 소재로 한 뒷담화를 떠든다. 소문은 주로 나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52.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56. 사람들이 유한회사를 집단적으로 상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런 회사는 회사를 설립하거나 돈을 투자하거나 경영을 맡은 사람과 법적으로 독립되어 있다.


67. 만일 수천 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먼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넣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정기적으로 수천 명씩 모인다.


97.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산업혁명 이전의 전쟁에서 사망자의 90퍼센트 이상은 무기가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때문에 죽었다는 점이다.


103. 바다로 나간 다른 포유동물, 즉 바다표범, 바다소, 돌고래 등은 전문화된 장기와 유체역학적 신체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오랜 기간 진화해야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유인원의 후손인 사피엔스는 물갈퀴를 길러내거나 고래처럼 코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태평양의 해상여행자가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배를 건조하고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기술 덕분에 호주까지 가서 정착할 수 있었다.


124.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130. 사람들은 풍요로운 시절에는 아이를 좀 더 많이 낳았고 궁핍한 시절에는 약간 덜 낳았다. 인간은 다른 많은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조정하는 호르몬과 유전자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풍족한 시절에 여자아이는 사춘기가 일찍 오고 임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다. 어려운 시절에는 사춘기가 늦게 오고 번식력이 떨어진다.


135.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150. 사람들은 인공 섬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심각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집과 목초지와 곡창지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축적되었다. 쉽게 옮길 수 없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한 장소에 메였다. 누리 눈에 고대 농부는 찢어지게 가난한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의 가족이 소유한 인공물은 수렵채집인의 한 부족 전체가 지닌 것보다 많은 것이 보통이었다.


153.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 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 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165. 하지만 '자유?' 생물학에 그런 것은 없다. 평등이나 권리, 유한회사와 마찬가지로 자유란 생물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상이다. (중략) '행복'은 또 어떤가? 생물학 연구에서는 지금껏 행복을 명확히 정의하거나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생물학 연구는 쾌락이 존재하는 것만을 인정한다. 쾌락은 좀 더 쉽게 정의하고 측정할 수 있다.


166. 볼테르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


183. 쓰기는 유형의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195.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점점 더 우리의 주이 되어가고 있다. (중략) 5천 년 전, 유프라테스 계곡에서 괴짜 수메르인들이 데이터 처리 과정을 인간의 두뇌에서 점토판으로 옮겼을 때 시작된 일들이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태블릿의 승리로 마무리되려 하고 있다. (중략) 세상의 새로운 통치자는 0과 1로 길게 능어선 이진수들이 될 것이다.


199.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이런 위계질서는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데 비해 다른 사회의 그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러운 기준을 근거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216.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227. 하지만 병사가 모두 남자라고 해서 전쟁을 관리하고 그 결실을 차지하는 사람도 남자라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중략) 이것은 농장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노예가 모두 흑인이라고 해서 농장주도 흑인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28. 중국에서는 군을 민간 관료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칼이라고는 한 번도 휘둘러보지 못한 관리가 전쟁을 지휘하는 경우가 흔했다. "좋은 쇠로 못을 만드는 것은 낭비다." 중국의 속담인데,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은 민간 관료가 되지 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229. 보통 승리의 열쇠는 본국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해외에서 동맹국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격적인 야수는 전쟁 지휘관으로서 최악일 때가 많다. 그보다는 유화정책을 쓸 줄 알고, 사람들을 조작할 줄 알고,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아는 협동적인 인물이 훨씬 낫다.


237. 오늘날 미국 정치도 이 모순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좀 더 공평한 사회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세금을 올려서 가난한 사람과 노약자를 돕는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한다.


253. 일부 사회에서는 중앙집중적 물물교환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문 재배자와 제작자에게서 물품을 다 받아둔 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런 실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것은 옛 소련에서 시행되었지만, 비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원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던 것이 현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일하고 가능한 한 최대로 받아낸가"로 바뀌었다.


263. 돈을 위조하는 행위가 다른 종류의 사기에 비해 항상 훨씬 더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조는 단순한 사기가 아니다. 주권 침해이고, 왕의 힘과 특권과 왕 개인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법률용어는 '왕권 침해'였으며, 그 처벌은 보통 고문과 죽음이었다.


265. 두 지역이 일단 무역으로 연결되면, 운송 가능한 물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힘에 의해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다.


270. 고대 로마인들은 많은 패배를 당했다. 역사의 다른 위대한 제국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은 전투에서는 지고 또 지면서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타격을 입더라도 버티고 유지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제국이라 불릴 수 없다.


280. 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과 전혀 다르며, 그들에게 빚진 것은 전혀 없다.


293. 설령 우리가 더 이전에 존재했던 진정한 문화를 재건하고 지키려는 희망에서 잔인한 제국의 유산을 모조리 거부하더라도, 보나 마나 그때 우리가 지키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덜 야만적인 제국의 유산에 불과할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인도 문화가 불구가 되었다고 분개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굴 제국의 유산과 그들의 델리 점령을 신성시하는 것이다. (중략) 만일 어떤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자가 있어서 뭄바이 기차역을 비롯해 영국 정복자가 남긴 모든 건물을 파괴한다면, 인도의 무슬림 정복자들이 남긴 타지마할 같은 구조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306.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3백 년 만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조할 때까지, 다신교를 믿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한 사건은 네 차례를 넘지 않았다. (중략)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312.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신교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중략) 일신교들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면서 대문으로 잡신들을 내쫓고서는 창문을 통해 이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성자들로 구성된 나름의 만신전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은 다신교의 만신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중략) 기독교 성인들은 옛 다신교의 신과 단순히 닮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바로 그 신들이 변장한 경우도 흔했다. 가령 기독교 전래 이전 켈트 섬의 최고 여신은 브리지드였다. 이 섬이 기독교화하자 브리지드로 세례를 받았다. 이제 성 브리지드가 된 그녀는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에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큰 추앙을 받는 성인이 되었다.


319. 그는 6년에 걸쳐 인간 번뇌의 핵심과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명상을 했고, 마침내 그 번뇌의 원인은 불운이나 사회적 불공정, 신의 변덕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번뇌는 사람의 마음이 행동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320. 고타마는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중략)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를 몇 년씩 꿈꾸지만, 실제로 찾았을 때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가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데 너무 값싸게 안주했다고 느낀다. (중략) 고타마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324. 근대는 강력한 종교적 열정의 시대, 전대미문의 포교 노력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시대였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다. 만일 종교를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 (중략) 유사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궁극적 승리와 함께 역사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책이다.


338. '어떻게'를 서술하는 것과 '왜'를 설명하는 것은 뭐가 다를까? '왜'를 설명한다는 것은 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필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41.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355. 과학이 진보하려면 연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상호 강화에 의존한다. 자원을 제공하는 정치적 제도가 없으면 과학연구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대신 과학연구는 새로운 힘을 제공하는데, 이 힘은 새로운 자원을 획득하는데도 쓰인다.


394.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은 이보다 더 나쁜 운명을 맞았다. 아주 훌륭한 고립 속에서 1만 년을 살아남았던 이들은 쿡이 도착한 지 1세기도 지나지 않아 거의 몰살당해다. 유럽 정착민들은 처음에 이들을 섬의 가장 비옥한 영역에서 몰아냈고, 이어 남아 있는 황무지까지 탐낸 나머지 이들을 체계적으로 사냥하고 학살했다. 최후의 생존자 가운데 일부는 기독교 복음주의교파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선의를 지녔지만 그다지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 선교사들이 서구 세계의 방식으로 이들을 가르치려 했다. (중략) 마지막에는 과학과 진보의 현대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길, 죽음을 선택했다.


39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 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404. 통역자는 비행사들이 조심스럽게 암기한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405. 15~16세기에 유럽인들은 빈 공간이 많은 세계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럽인의 제국주의 욕구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략)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437. 만일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내가 그중 많은 부분을 가졌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은 게 분명하다.


439. 가령 기존의 빵집을 망하지 않게 하면서도 초코 케이크와 크루아상을 전문으로 하는 제과점을 새로 열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저 새로운 취향을 개발하고 더 많이 먹으면 되니까.


466. 만일 우리의 구두공이 월급은 너무 적게 주고 일은 너무 많이 시킨다면, 최고의 일꾼들은 자연히 그를 떠나 경쟁자의 가게로 일하러 갈 것이다. (중략) 이론상으로는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왕이나 사제가 감독하지 않는 완전 자유시장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독점을 할 수도 있고, 노동자를 탄압하기로 서로 공모할 수도 있다.


469.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대서양의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473. 둘 중 하나가 부족해서 경제성장이 느려질 위험이 생기면 그때마다 과학적, 기술적 연구에 투자가 흘러들어 갔다. 그러면 예외 없이 기존 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와 원자재가 만들어졌다.


480.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486.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달걀과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을 내어 자기가 살이나 그 산물을 먹고 있는 닭과 암소, 돼지를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492. 소비지상주의는 대중심리학(Just do it!)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탐닉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무진장 애썼다. 설득은 먹혔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지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509.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수위에게 주어야 할 급여액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이들이 국가에 저항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515. 지난 2세기 동안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그런 나머지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중략)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518.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 중에 천 년 동안 살아온 사람이 없으니, 과거에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쉽게 망각한다. (중략) 우리는 집단 전체보다 개인의 고통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526. 첫 번째이자 다른 무엇보다,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중략)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542. 만일 단신이 5천 년 전의 어느 마을에 사는 18세 젊은이라면, 아마도 스스로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을에 남자라고는 50명밖에 안 되고, 대부분 늙었거나 얼굴에 상처나 주름이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날의 십 대 청소년이라면, 스스로 부적격자라고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사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애들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렇다. 당신은 그 애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TV나 페이스북, 대형 광고판에서 매일 보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슈퍼모델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546.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상대적으로 즐거운 상태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세상이 그의 발치에 어떤 선물을 놓아주든 항상 언짢은 상태인 사람도 있다.


558.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559.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생물학자들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슬로건이다. 하지만 부처의 가르침과는 거의 반대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이 외적 조건에 달려있지 않다고 하는 점에서 부처의 생각은 현대 생물학이나 뉴에이지 운동과 궤를 같이 하지만, 부처의 가장 심원하고 중요한 통찰은 따로 있다.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도 더욱 심해진다. 부처가 권하는 것은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


563. 돈을 받은 연구소는 지극히 평범한 토끼의 배아에 녹색 형광을 발하는 해파리의 유전자를 삽입했다. 그러자 짜잔! 녹색 형광 토끼 한 마리가 탄생했다.


577. 마치 사피엔스가 침팬지에게 월스트리트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컴퓨터 역시 사피엔스에게 투자전략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중 다수는 결국 그런 프로그램들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