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혀있는 선을 풀어내듯 더이상 쓸 데가 없는 물건을 버립니다.
살다 보면 필요해서 들인 물건도 있고,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데 가격이 싸서,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물건이 늘어납니다. 집이란 공간도 한정되어 있고, 삶이란 시간도 무한하지 않기에 하나를 들이면 하나가 덜어져야 균형이 잡히겠죠. 물론 처음 독립을 한다거나, 더 큰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거나 해서 내가 다리를 뻗을 만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면 버리는 것을 조금 미루어 둘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올해도 벌써 10월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겉옷을 하나씩 더 챙기게 되고, 창을 열어두고 잠자리에 들면 코 끝에 쌀쌀한 든 지 며칠 되었습니다. 이제 2021년도 석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연말을 앞두고 물건들을 조금 정리하면서 조금은 더 가볍고 부담 없는 2022년을 맞아볼까 합니다.
벌써 2년째 우리 삶과 함께 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 덕분에 쇼핑을 비롯한 외부활동이 극단적으로 줄어들다 보니 집에 늘어난 물건이 거의 없습니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할 것을 권장하기도 하지만, 저부터도 괜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아 사람들 많은 곳은 거의 찾지 않고, 백신도 가급적 빨리 맞을 수 있는 일정에 접종했었죠. '생활에 필요한' 구매와 활동만 하다 보니, 생활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먹는 것' 말고는 뭘 사본 기억도 없습니다. 삶의 질 차원에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가정 경제 차원에서는 꽤 득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돈이 흘러가는데 확실히 보탬이 되지는 못했고요.
'사지 않는 것'이 기본값(default)이 되다 보니 문득 집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바라볼 때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아닌데, 어울리지 않는 것인데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세일이라고 들인 물건들. 살 때뿐이고, 정작 한 번도 제대로 꺼내보지 않은 것들. 한 때 필요했으나, 잘 썼으나, 고장 나서, 세월이 흘러 필요 없어져서, 그렇게 못쓰게 된 것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처박아 둔 것들도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물건을 버려나가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하나씩 버려가면서, 이 물건을 왜 샀었는지, 어떻게 사용했었는지, 왜 버려야 하는지, 옛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볼까 합니다.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제 삶의 조각들도 챙겨보고, 물건을 살 때 그 '사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이유를 만들었건 것처럼 물건을 정리할 때에도 그 이유를 챙겨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눈에 띈 물건은 오래된 차량용 오디오 무선 카팩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큰 소비를 하나 한 것이 있더군요. 올해 차를 샀거든요. 이전에 타던 차는 2003년식 닛산 큐브였습니다. 30대 후반, 40대분들은 제법 기억을 하고 있으실 수도 있는 차량이겠죠. 2000년대 후반 인기리에 방영했던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공유, 윤은혜 주연의 드라마에서 이선균이 타고 나온 차량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공간 효율성과 연비 등으로 내수용으로 인기가 있었던 차량으로 유명했습니다. 재작년 오키나와 여행 당시 일본 현지에서도 아직 많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죠.
그 차량을 2008년에 4~5년 3만 km 정도 된 차량을 중고차로 구입해서 올해로 만 13년을 가득 채워 잘 탔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3년식이었으니 차량 나이로는 18년, 이제 막 성인이 된 차였네요. 저는 보통 출퇴근을 도보로 하기 때문에 아내가 장 보러 갈 때 조금 타고, 주말에 조금 타고 해서, 사실 1년에 많이 타야 1만 km, 보통 5천 km 정도로 주행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저희가 타는 10년 동안 10만 km를 채우지 못했으니까요. 박스 형태의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 덕분에 차가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고, 별다른 관리를 안 해도 깨끗했습니다. 일본 차량이 많이들 그렇듯이 내구도가 좋아서 별 잔고장도 없었고요. 사실 유행도 안타는 디자인이고 해서, 딱히 차 욕심도 없고 해서, 바꿀 생각도 없었고 영원히 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차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지만, 오래된 차량이어서 조금 관리가 필요했던 것인지 지난 겨울부터 차량에서 잔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여름을 앞두고 올해 6월 에어컨을 틀어보니 에어컨이 안 나오더군요. 정비소에 들어가 보니 엔진오일을 제때제때 갈아주기는 했으나, 누유가 있어서 오일 부족 상태에서 주행이 제법 되었고, 에어컨 관련되어서는 연관된 부분에 손이 좀 들어갈 것이라고 하더군요. 차량의 중고 시세를 넘어서는 대략적인 수리비 견적을 받아보고, 차량을 교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코로나19로 돈 좀 모아 보나 했는데, 이렇게 또 큰돈이 나가게 되었네요.
차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오늘 버리기로 결심한 무선 카팩들은 저 차량에서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차량이어서 그런지, 당시 일본에서 밀고 있었던 MD(Mini Disc) 오디오가 부착되어 있고, 카세트테이프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90년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카세트 테이브 모양의 카팩이 있어서 그걸로 MP3도 듣고 했었는데, 이 차량에는 그게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원하는 음악을 카 오디오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무선 카팩을 구매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팩이 하나가 아니라 두어 개더군요. 그때 기억을 되새겨 보니 처음 구매했던 제품은 정작 사용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차량이 일본 내수용 차량이었기 때문입니다.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본에서 굴러다니던' 차량이었죠. 그러다 보니 카 오디오 주파수가 일본에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FM 라디오가 80 Mhz부터 110 Mhz 부근까지 사용하는데 비해, 일본 내수용 차량은 70 Mhz부터 90 Mhz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구매했던 무선 카팩이 90 Mhz 이상의 주파수만 세팅할 수 있었거든요. 즉, 쓸 수 없는 제품을 덜컥 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80 Mhz 대역을 세팅할 수 있는 것을 사고 그걸로 멀리 여행 가고 할 때 iPod에 있는 음악도 듣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아직 스마트폰이 많던 시기가 아니라, 게다가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던 시기도 아니라 어디 여행을 간다거나, 몇 시간 운전을 할 일이 있다고 하면 그 콘셉트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MP3에 담아서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아내와 여름철 바닷가를 가기 전에 시원한 여름 가요 리스트를 만들어서 같이 들으면서 여행지를 찾아가는 것이죠. 요즘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로 툭툭 찾아서, 블루투스 연결해서 들으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준비하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예전 닛산 큐브 차량의 주파수 제한 때문에 라디오는 거의 89.1 Mhz KBS 파워 FM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주파수는 어차피 나오지도 않거든요.
새로 산 차량에는 요즘 다 기본으로 들어있는 블루투스가 잘 잡힙니다. 별도 세팅도 필요 없이 차에 타면 알아서 잡아주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고 핸들에 있는 버튼 몇 개 누르면 라디오가 아닌 스마트폰에서 송출되는 소리가 카 오디오를 통해서 빵빵하게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 무선 카팩으로 들을 때는 아무래도 저 작은 크기의 라디오 트랜스미터가 성능이 좀 떨어져서 그랬겠지만 잡음도 있고 스테레오도 왔다 갔다 하고 그랬거든요. 그렇다고 새로 산 차량이 좋은 차도 아니고, 그냥 기본 사양일 뿐인데도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차를 바꾼 지가 6월이니 벌써 3~4개월이 흘렀습니다. 이 물건들은 예전 차량을 딜러에게 넘기기 전에 글러브 박스에 들어있던 것들이었습니다.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에 서랍 어딘가 처박아둔지 벌써 3~4개월이 흘렀단 이야기겠죠. 이러다가 열어보지 않은 서랍에 계속 보관되다가, 나중에 이사를 갈 때도 따라오고, 이사 와중에 더 깊은 서랍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치가 바뀌면, 영영 찾을 수는 없지만 집 한구석에 불필요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쓰레기 아닌 쓰레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차량용 오디오 무선 카팩은 제게 더 이상 쓸데도 없고, 쓸 수도 없고,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미뤄두고,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귀찮음이 컸던 것일까요, 우유부단했던 것일까요. 필요 없는 물건을 사지 않듯이, 쓸모없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것이 맞다는 단순한 기준에 따라 저것들을 잘 묶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서울이 기준은 아니겠지만, 올해 들어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 평당 가격이 2천이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저 작은 물건들이 모이고 모여서 여기저기 쌓여있으면, 어쩌면 나도 모르는 몇천만 원의 공간이 낭비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당분간 이런 것들을 잘 찾아봐야겠습니다. 뭔가 '결심'을 해서 버려야 하는 것은 아직 제게 조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조금은 더 쉬운 '쓸데없어서 당연히 버려져야 하는 것들'을 찾아볼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채워나가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비워나가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올해 처음으로 되어보는 마흔의 삶, 그리고 그 해의 7부 능선 지나오는 길에서, 처음으로 비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