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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Jun 09. 2022

오지 않은 여름, 에어컨

에어컨에 대한 내 마음의 짐

내가 지금 지내는 경주는 5월 초에 31도를 찍어버렸다. 가물다, 가물다 했지만 비는 세 달만에 모습을 아주 잠시 보여주었다. 땅은 여전히 뜨겁다.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경주가 분지라, 원래 덥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폭염주의보는 7월에나 듣기 시작하는 뉴스였는데, 이제는 오월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햇볕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나름 볕에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날씨 같아서는 한낮에 나가는 것 자체가 망 모자 없이 나가는 게 두렵다. 간혹 어지럼증을 느낄 때도 있었다. 눈 앞이 하얘지는 아찔함… 약 10년 전 프랑스에서 1만 5천 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데, 나도 합류하는 건가? 이런 날씨는 이론으로 알고 있었고 예상하고 있었던 상황이지만, 막상 겪으니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에어컨을 찾게 된다. 얼마전 인터뷰했던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에어컨을 쓰는 것에 대해 비난하면 안 된다며, 지금은 기후가 달라져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새삼 위로가 됐다.


하지만 조금 마음에 갈등은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에어컨… 쓰지 않으려니 낮의 뜨거움이 견디기 어렵고 쓰려고 하니 기후변화가 걸린다. 우리나라 연료의 대부분이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면 이 고민도 안 하겠지. 아직 우린 에너지의 70%가 화석연료에서 온다고 하니 쓰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6월 초인 지금은 그나마 밤이 선선해 그 시간은 자연의 힘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만 곧 다가올 열대야에는 에어컨 켜는 걸 피할 수 없을 거다. 이제 고작 유월의 초입에 더위에 불볕에 괴로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8월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내가 보태는 힘이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들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뭐라고 기후변화에 도움되는 짓을 해 봐야 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늦은 밤, 멀리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이런 내 마음을 위로해 줬다. 여름, 잘 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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