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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sol Apr 06. 2016

우리는 존재가 되고 싶다

김경미, 「비망록」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 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치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지우지 않도록.    

                                                                                                                  김경미, 비망록 전문


  화자는 무감각하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스물네 살이 되었음을 자각한다. 스물 네 살의 삶을 살면서 화자는 무언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만한 두근거리는 일을 기다렸지만 삶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타인은 나에게 의미를 불어넣어 줄 것 같았지만 고스란히 눈물만을 남길 뿐이다. 타인조차 무의미하다. 화자에겐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결실을 맺는 계절 가을이 더듬거리며 찾아 왔을 때 화자는 이제 나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며 문을 열지만, 지천에 널려있는 코스모스만이 화자에게 인사한다. 화자는 또 한 번 의미가 되지 못하고, 석류 속처럼 붉은 몸을 가진 아이를 낳아 자기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비친다. 그러나 화자는 끝내 무엇도 되지 못한 채 스물다섯을 맞는다. 

  꽃다운 나이 스물네 살의 화자는 끝내 의미로 피어나지 못했다.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마음에는 없지만 나를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사내와 좀 더 만나볼걸 하며 지나버린 시간에 미련을 보인다. 아무 일 아닌 듯해도 화자에겐 그 시간들이 아쉽기만 하다.

의미를 가진다는 일, 누군가에게 꽃으로 피어나는 일은 무겁다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지우지 않도록.’  


  타인에게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묵직해지는 일이다. 이전에 화자는 무엇에도 무게지우지 않으며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 했지만 이제 가볍게 살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묵직함으로, 존재로 다가가려는 화자의 의지가 엿보인다.  

  화자처럼 우리도 의미를 가진 진정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도 화자와 마찬가지로 번번이 의미화에 실패하고 만다. 왜 우리는 의미화에 실패할까? 우리의 삶도 화자의 스물네 살의 삶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자체로 무겁다. 삶이 무겁다보니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무게지우지 않고 가볍게 살고 싶었으나 이내 외로움이 밀려들어온다. 손에 민들레씨앗을 올려놓으면 금세 날아가듯이, 가벼운 삶은 아무흔적도 남기지 않고 외로움만 남기기 때문이다. 왔다 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기에 삶은 무의미로 화한다. 

  무의미한 삶은 단조롭고 권태롭다. 새로울 것이라고는 별로 없다. 그러면서 점점 우리는 타인에게 무감각해진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스쳐지나가고, 만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의미를 주지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의미화에 실패하고 존재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한 번쯤 ‘저 사람에겐 내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저 사람도 내 생각을 할까하는 생각도, 당신에게 나는 어떤 의미가 있긴 한 것인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해 봤다면, 우리는 존재가 되길 원하는 실존자들이다. 화자는 우리에게 의미가 될 것을 말한다. 우리도 화자와 함께 가벼움을 털어내고 묵직함으로 세상을 마주하자. 우리는 언제나 진정한 존재로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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