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언
나는 금사빠다. 책 금사빠. 이번에 읽게 된 '맛의 원리' 라는 책도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내 스타일이야 완전. 이 책은 '맛'이라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 여겨지던 영역을 과학과 객관의 영역으로 가져가 이면 저면 뜯어서 요목조목 설명해주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게 산산히 조각나는 기쁨이란! 이렇게 쓰니 약간 변태같긴 하지만, 맛이란 대체 뭘까 음식이란, 요리란 어떻게 하는게 잘 하고 좋은건지 두루뭉실하지 않고 뾰족하게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근사한 책이었다.
맛의 원리 책에서는 친구들에게 재밌게 얘기해 줄만한 지식들이 나오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왜 다이어트 음식은 실패하는가' 이다. 시중엔 수많은 다이어트 식품이 나와있지만, 사람들이 먹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음식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내장 기관도 맛을 느끼기 때문이다. 농담삼아 맛의 단위는 칼로리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사실 이라는 얘기다.
혀에서는 음식의 극히 일부인 저분자 물질을 느끼지만 장에서는 분해된 각각의 성분을 총량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다이어트 제품이 실패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처음 한 번은 먹겠지만 두번째에는 이미 몸이 진실을 알고 있다. 먹어봐야 영양분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칼로리가 0이면 결국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는 이유가 내장기관이 맛을 느끼기 때문이라니, 흥미롭다.
유튜브에 보면 고기 맛있게 굽기에 관한 영상들이 조회수 몇백만 몇천만을 기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영상등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용어가 있는데, 마이야르 반응이다. 이는 단백질에 높은 열이 가해지면 발생하는 현상으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야 로스팅 향이 생기고 음식이 맛있어 진다. 인간은 로스팅 향에 있어서 만큼은 개의 후각만큼이나 예민하다고 한다. 이 마이야르 반응은 물의 끓는 점이 100도에서는 미약하고 160~190도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 수분이 많으면 물이 끓으면서 열을 빼앗기 때문에 반응이 약해진다. 마이야르 반응이 흥미로운 점은 저온에서 장시간 처리한다고 로스팅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비드 요리가 물성은 완벽한데 향은 부족해진다. 그래서 수비드 조리 후에는 고기를 다시 팬에 굽거나 토치로 겉을 익혀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책을 보다면 지방, 소금, 설탕이 얼마나 맛에 있어 중요한지 내 감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당연히 맛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지방, 소금, 설탕이 존재함으로써 단순히 맛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들의 향과 물성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얘네 없으면 음식이 맛이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살이 찌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다이어트란 애초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닌 것만 같다.
향, 물성, 페어링, 음식 마케팅, 심리 등등 맛을 이렇게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는지 조차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원리를 모른다고 해서 맛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감각의 원리를 알게 되니 음식 먹는게 더 재밌어 졌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먹는다지만 그러기엔 우리는 너무 자주 먹어야 하고, 먹는데서 오는 즐거움도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