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상담을 일 년 하고도 4개월 즈음했던 것 같다.
그중에 일 년 가까이는 한주에 한 번씩, 나머지 4개월은 이주일 혹은 삼 주일에 한 번씩 했던 것 같다.
나의 외국 친구들은 개인 상담사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딱히 내가 겪은 우울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모호함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친구가 아닌 제삼자의 냉정한 눈과 함께 조력자를 구하는 것이다.
삶의 어떤 순간순간,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친구에게 말하거나 혹은 징징거리는 대신, 자신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상담가에게 쏟아내고 나서 그 속에서 자기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한 지점을 상담사와 함께 이야기하며 자신의 심연으로 마음 다이빙 전문가와 함께 첨벙하고 뛰어내리는 것이다.
모래바람이 불어 시야가 흐려지거나 짓궂은 바다생물이 나를 뒤쫓아와도 전문가가 옆에 있다는 든든함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이사를 할 때 아무리 일 잘하는 친한 친구가 도와주어도 조금은 마음에 안 들고 또 이사가 끝나면 그들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거한 밥도 사주던 학생 시절 이사와는 달리 사회인이 되어 이삿짐센터에게 다 맡기고 나서 돈만 주면 되는 그런 깔끔한 마음?
조금 예가 다르지만 요점은 친구에게 내 속을 다 쏟아내고 나서 드는 괜히 이야기했나?
내가 내 친구를 감정의 쓰레기통 정도로 생각하진 않았나...
그런 불편함이 상담가에게는 내가 돈을 지불하고 그의 시간을 사는 거라 마음은 편하다는 것과 이렇게까지 내밀한 이야기를 다했어도 우린 일종의 거래를 통해 만났기 때문에 이 이상 질퍽해지지 않는다는 깔끔함이 있다.
보통의 상담비는 오차범위 내의 시간당 10만 원 상당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의 지불가치는 친구와의 라떼 두 잔 값과 10배 차이인데 10배만큼의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차가 너무 많지만 나에게는 라떼 2잔의 10배의 효과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로서는) 많은 기대를 하지 말고 찬찬히 자신을 풀어나가는 실마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시작하라고 말해두고 싶다.
내 경험에 의하면 상담에도 초중고급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 맞던 상담사가 나중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덧셈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지금은 미적분이 궁금해진 것인데 나의 상담사는 아직도 내 초등과정을 지도해줄 수 있는 정도의 선생님인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선생님과의 상담의 호흡이 어려워지면서 나를 의심했던 것 같다.
혹시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워진 것은 아닐까 하고...
왜냐하면 상담의 어떤 단계 단계에서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힘이 부쳤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굳이 들춰보고 싶지 않던 어떤 기억/감정들을 굳이 뒤집어볼 때마다, 그 감정이란 미꾸라지가 만든 흙탕물에 한 주의 반은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담을 받아야 하는 내 지금의 상태가 '나'그리고 '내 마음 상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한다.
혹시 내가 왜곡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내가 나의 상태를 '정신적으로 약해진 상태의 사람'로 보고 있는 것이라 나의 어떤 마음에도 내가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지지부진한 상담을 이끌리듯 가다 보면, 답답해오면서 결국은 내 온전하지 않은 마음에도 피할 수 없는 확신이 들면서 상담사와 나 사이에 어떤 레벨 조정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그때에 내가 나를 믿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잠시 홀로 서보면서 찬찬히 나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상담을 통해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고 쳐지기만 하고, 생에 의지가 전혀 없는 나를-
진흙창에 떨어진 나를 어떻게든 뭍으로 끌어올리는 것, 어떻게든 살아내어야겠다는 것이 나의 목표였던 것 같다.
어찌할 줄 몰라서 몰랐지만 내가 나의 느낌과 마음을 정의 내리지 말고 말을 하자.
상담사에게 내가 겪은 일련의 해프닝들을 구술하듯 말하고 설명해서 상담사가 나에 대해 관찰하여 그 나름의 느낀 점을 나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나가가길 바랬다.
그러나 그가 섣부르지 않게, 내 어떤 하나의 해프닝으로 내 전체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나를 다 풀어놓기로 했다.
피드백이 별로 없이 일단 내가 말들을 무질서하게 풀어놓는 거였기에 '시간과 돈을 먼저 버리자.'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것이 나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그래서 desprate/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내 속에 있는 말들을 토하듯 쏟아내었던 것 같다.
사실 그즈음에는 앱에서 쉽게 상담사와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써본 일도 있었다.
그것은 어떤 일회성 같은 느낌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있어서인지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이야기하고 빨리 결론(?)을 지어주려는 경향이 있었다.
나에게는 맞지 않았고 뻔한 위로와 답은 나를 김 빠지게 했고 더욱 절망적이게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 곧 죽을 것만 같던 늪에서는 나왔지만 내 젖은 옷과 배낭을 주섬주섬 챙겨 또 앞으로 걸어야 하는데 그 단계까지는 함께 할 상담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산 넘어 산이라고...
또 앞에 산이 있는 느낌이어서 사실 나는 힘이 쭈욱 빠진다.
그 작은 산도 겨우 넘어 왔는데 또 눈앞에 조금 더 높은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상담에서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그 이상한 늪에 빠져 있던 나와 늪 밖으로 걸어 나와 빳빳하게 말린 옷을 입고 가방을 멘 내가 이제부터 가야 할 길 앞에서 악수하고 헤어지길 바랬던 것 같다.
"Bye for now"
라는 일단의 작별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간신히 살아있다.
내가 상담에서 얻은것은 가장 절실하고 기초적인 것만 이뤘다.
살.고.싶.은.것!
내가 상담을 시작할 즈음에 상담에 대한 정보를 잘 찾아볼 수 없어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나아질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단 상담이라도 시작하자는 그때의 막막함을-
내가 쓰는 이 글, 내 아주 개인적인 의견으로 누군가가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 글을 쓴다.
결국 내가 상담을 통해 원한건 고장난 나침반을 고쳐-
지쳐 있는 나를 살살 달래도 마음도 알아주며 이제 내 앞의 산을 조심조심 걸어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힘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