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가르쳐준 내 삶을 살겠다는 아름다운 마음
한국으로 딱 2년 만에 돌아왔다.
한국 나의 한국이다.
나의 가족이다.
나의 집이다.
내가 나고 자라면서 본 사람들과 풍경이다.
내가 그리워하던 그 풍경이다.
이제 내가 그 풍경 속으로 점프를 했다.
첨벙
그러나 나는 흑백 사진 속의 나만 칼라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 칼라 사진 속 나만 흑백 사진이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
내 머릿속에 존재하던 그 그리움들은 내가 꾸준히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것이고 요사이 코로나 2년 동안 내가 그 그리움들에 무수한 형용사들을 덧씌웠나 보다.
돌아온 곳-이곳은 이미 내가 아는 곳이 아니다.
유효 기간이 지난 기억 속이다.
나는 떠나오기 전 내 마지막 기억
스물 언저리의 나와
애기였던 조카들,
갓 사회에 나간 친구들,,,
많이 젊은 부모님
그 기억 속에 억지로 나를 끼운 것이다.
이제 돌아와 현실로 걸어 들어올 때이다.
이 쓸쓸한 진실은 내가 머리 저 구석에 늘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십 년 전 내가 런던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본 몇몇 한인회 분들이 계셨다.
그들은 오래전 한국을 떠나왔던 그대로의 사고를 가지고 계셨고, 그들 마음속의 나라는 아직도 저녁이 되면 밥 짓는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우던 그때의 한국이었고 늘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강조하셨다.
오래전에 그것도 유럽으로 떠나셨던 그들의 생각보다 경직된 사고가 나에게는 작은 물음표를 주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딱 그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에서도 주변에서도 내가 감히 생각해내지 못할 줄임말들이, 그리고 그런 것들이 주는 우아하지 못함이 나를 눈살 찌푸리게 한다.
나는 그때 내 유학 시절에 만난 올드한 해외 동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우리 집 나무 천장이, 나무 벽이 나를 자꾸만 어떤 시점의 나로 데려간다.
아직 스물둘 정도의 나로 데려간다.
예전 언니 방을 내 방으로 쓰고 있는 지금의 이 방의 커다란 전신 거울만이, 지금의 나로 다시 되돌려준다.
자꾸만 덜 깬 꿈처럼 '스물둘의 내'가 성큼성큼 걸어가, 거울 앞에 서서
'지금의 나'
를 만나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한다.
일본에서의 나는 잠이 덜 깨도 지금 내 나이의 나였다.
나는 내 인생의 어디 즈음 와 있을까?
캐리어 가방 하나를 단출히 들고 마음만은 단출하지 않았던 유학 가던 날의 나,
잠 안자며 공부를 하고 또 뜨겁게 사랑을 하고
많은 것들을 꿈꾸고 다짐했던 나,
일본에서 첫회사를 다니며 언어 공부를 하던 나,
파혼을 하고 힘들어하고 난 후에 다시 긴 연애를 시작했던 나,
친구의 죽음과 퇴사, 헤어짐
그리고 가벼워질 줄 알았던 내 마음속으로 훅하고 들어온 마음의 병
코로나로 인해 나뿐 아니라 세상도 멈추고 난 이후에
조금씩 조금씩 나도 세상도 한 숨 쉬어질 지금에 돌아온 내 나라, 내 고향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허리가 더 구부러진 엄마의 밥상이 마음이 무거워졌고,
손맛이 좋던 엄마의 달고 짜진 음식들이 나에게 무한한 서글픔을 주었고,
학벌이 좋은 늙은 아버지의 똑같은 TV 프로그램과 편향적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낡은 똑똑함이 답답함을 주었고,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양육하고 밥벌이에 온 정신이 다 가있는 몇 없는
오래된 친구의 무심함이 섭섭함을 주었고,
그 넓던 이태리제 6인용 탁자의 반이 약과 몸에 좋은 식품들도 뒤덮여 있는 어지러움이,
센스가 있던 엄마의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한 서랍장, 짝이 맞지 않는 침구들에게서 느껴지는 시골집 할머니방 같은 서러운 어지러움이...
무엇보다 그곳에 한결같이 있던 내 그리움이,
그 크던 그리움이 뒷걸음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겨우 앞으로 갈 힘을 얻고 원점인 내 나라로 돌아왔는데..
또다시 이 어지러운 감정들에 뒤 걸음질 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별 거 아닌데, 모두가 다 겪어가는 감정인데...
이 감정들에 쏠려서 나는 또 이 사사롭지만, 많은 감정들을 다 받아내고 있다.
나는 앞으로 가고 싶은데, 또 발 묶인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다 내 선택이었을까?
나는 다만 내 모든 순간들을 다 잘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아주 가까운 미래에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날들을 조금 길었지만 의미 있는 방황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내 우울은 어두운 터널을 나온 것 같다.
그러나 내 현실이 아직 그 어둠 속이다.
아주 늦게 시작된 방황이 이리도 긴 터널일 줄이야 나는 몰랐다.
내 생애 처음으로 우울과 마주 하였을 때는, 그때는 그 감정의 굴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려서인지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매시간 떠올렸다.
어찌할 수 없는 나, 그리고 특별하게 아프지도 않은데 엉망이 되어버린 내 몸과 정신을 어찌하지 못할 때
나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하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내 '나름의 역경'을 하나하나 다 겪어내고, 느껴내면서 이 힘든 와중에도 자-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인생을 충만히, 풍만하게 살았다는 증거처럼 거센 파도도 바람도 비도, 폭설도, 폭염도 다 온몸으로 맞고서도 꿋꿋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 인생이 어떤 인생이든 그냥'내게 주어진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
나에게 보내는 가장 큰 사랑이고 자존의 의미인 것 같다.
우리는 모두가 다 행복하길, 따스하길 바라지만 인생은 꼭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인생이 '내 인생'이라서 살고 싶다.
우울이 내게 준 bitter present다.
그렇다면 나는 bitter sweet 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쓰다 보니 이제 스물둘 즈음에 나는, 내 인생이 나의 것이므로 내 뜻대로 될 거라 생각했던 그 어린아이는 보내줘야 하겠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이라도,
그게 나의 몫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살아내고 살아가는 인생을 택하는 지금의 나는, 나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