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점검

서서히 상담 마무리를 생각하며...

by flyingfish
이제 그만 일어날까, 아이야
시간들이 지나가더라....
중간 점검
이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더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지만,
지나가게는 되더라

빠듯하게 바빴다.

이 공간에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이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잠시 고국으로 돌아갈 날들을 준비 중이다.


요즈음 불안/무서움에 눈을 뜨는 날이 많아졌다.


거의 2년을 코로나와 그리고 우울과 함께 지냈다.

장기수 죄수의 석방 전 느낌이 이러할까?

물론 나가고 싶었고, 나가고 싶고, 보고 싶었고, 보고 싶은 가족이지만

이국에서 '나'라고 하는 감옥에 갇힌 날들 속에 어느덧 이 감옥이 익숙해진 건가 보다.

그래서 나가는 게 오히려 두렵다고 느껴지는 감정이 어디서 인가 올라오고 있나 보다.

요즈음 아침에 눈을 뜨면 왠지 모를 불안과 무서움에 휩싸이는 것 같다.

나도 멈추고 코로나로 세상도 멈추어진 속에서 나는 차라리 어두운 안정감을 느꼈나 보다.


이제는 내가 우울이란 나락에 떨어지지 않으리란 어떤 마음으로부터 자신도 생겼다.

그러나 내가 처음에 우울에 빠지고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하였을 때는, 지금 잠깐 어떤 구멍을 빠져서 힘든다고 생각하고, 상담도 하고 차차 밝은 인생으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이 무척이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현실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구멍에 빠진 게 아니고, 지진처럼 프레이트가 서서히 서서히 어긋나다가 어느 순간엔 쾅하고 흔들리고 무너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갑자기'가 아니었던 만큼, 요즈음은 내가 언제 나사가 빠져가는지 몸이 힘들어지는지, 마음의 무리를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어서 극단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껐은 내가 애써 감춰고 또 보수 작업을 나도 모르게 한 것일 뿐 기반 대가 튼튼한 사람이 아니다.

마음의 지지대가 튼튼한 사람이 아니고, 아주아주 섬세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본연의 모습을 끙끙대며 애써 감추고 애써 애써 반듯반듯하게 세워두던 그 시절로 절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돌아가질지 알고 이 시간들을 버텨 내었건만.. 나는 이미 2년 전의 내가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고, 이걸 알아낸 게 무서웠다.







막연히 돌아갈 수 있고 더 나은 인생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꽉 찬 내 절망의 시절과 작별의 시간이다.


이렇게 이 공간에 응석 어린 말 한마디를 써두고 이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일단은 상담을 종료할 시간이 온 것 같다.

구멍에 떨어진 줄 알았던 나를 빛이 있는 곳까지 함께 걸어왔고, 보고 싶지 않은 나와 마주하게 하였으며 이제 "받아들임"즉 "수용"을 하고 나면 편해진다고 하셨다.


"진정한 수용을 하면 편하게 되어요"

아직 그 길의 초입에 있어서 가보지 않은 길이고 그녀도 진정 그 길 위에 편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으므로 이제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엔 물에 빠진 내가 그녀가 던져준 구명조끼를 입고 겨우겨우 뭍까지 올라와 숨을 쉬고 이제 야서서 걸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그러나 그녀, 아니 이 상담의 최대치는 여기 이것 같다.

돌아갈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에게 내가 갈 길의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줄 만한 그만큼의 여력은 보이지 않는다.

태어나 사는 것도, 우울도, 상담도 다 처음이라 사실 상담 종료 시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상담사에게 넌지시 이런 의사를 비춰보기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했지만 쉬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상담사도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는 식의 답변만 줄 뿐이었다.


그렇다.


아주 심각하지 않은 우울을 앓으면서부터 시작되었던 끝도 없는 자신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 좀 힘들었었다.

약물치료, 상담사, 치료 기간, 종료 시기 등등...

전문가들 속에서 약 처방을 내가 하는 것 같은 막막함이 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상담의 목표, 기간, 종료 시기 등을 좀 더 써봐야겠다.

언제가엔 나와 같았던 이들에게 그 막막함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다.

물론 희미한 불빛밖에 없는 이 길을 혼자 지나가고 난 다음에 말이다.


이제 내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였으니 '수용'의 길로 더 걸어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사실 내 본연의 모습이 나에겐 아직 무겁고 불편함으로 이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방법(다른 상담사 찾기)을 찾아 볼 것인지 또 생각해봐야 한다.

이 우울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내가 배운 것은

내 인생은 나의 것

생소하고 황당한 일을 겪은 것 같았는데 모든 게

당신 뜻대로 하세요

란 말을

가장 모르는 분야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들었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나에게 주어진 끊임 없는 결정권.

그 속에서 무수한 고민을 하고 오늘에 온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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