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을 안고 오늘 살기
저 그림을 그린 저 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요 며칠간은 글을 못 썼고,
요 몇 주간은 그림을 못 그렸다.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고 상담을 하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이 채워지고 또 시원함도 느끼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모호함이 가져다주는 정기적인 불안과도 싸우고, 저녁이 되면 애써 그림을 그리고 애써 나를 위로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사실 이 모든 순간순간들은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고, 끊임없이 아무 일도 아닌데 혼자 불안해지는 나를 나무라고 화내는 내 안에 있는 나랑 타협하는 것도 사실 일이었다.
애썼다. 나야!
그리고 이 맘 때 즈음에는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과 인연이 조금씩 끊어지고 있었다.
돌아보면 내가 나에게로도 분리되어 가고 있었고, 또 여러 잔가지 같은 인연들이 떠나갔던 시기였던 것 같다.
요까지만 인생을 살아보고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지만,
인생에 어느 시점에는
내가 이제껏 필요로 인해 만들어놓았던 나 자신의 어느 한 큰 부분,
조금씩 비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외국에서의 삶의 외로움 때문인지, 그 긴 세월의 인연 때문이지 꽉 잡고 있었던 소중한 인연들이
큰 태풍이 온 다음날의 나무처럼 쑤-욱 뽑혀가는 시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자꾸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만 내 힘이 그렇게 세지도 않았고, 내 마음 깊숙이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마음이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적극적으로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았다.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들이 일어나기보다는 이대로 두는 것에 대해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 떠나간 오랜 연인에 대한 화, 떠나간 친구에 대한 섭섭함, 어느 순간 알아버린 가까운 사람의 이면을 보고 나서의 허망과 실망
그리고 나를 매일같이 괴롭히는 실재 없는 불안과 우울.
내가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를 땐,
매일매일 걷고 또 걸었다.
어찌할 수 없는 질척거리는 시간들에 심하게 휩싸이는 날에는 커튼을 모조리 치고 웅크려 앉아 있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 안에 나를 돌보는 엄마 같은 자아는 그런 것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작은 무엇이라도 하여 오늘 하루만 잘 쌓아 올리면 내일이 무너져도
일단
오늘만,
오늘만,
그렇게 쌓인 오늘들이 오늘 글을 쓰게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생각들을 뒤로한 채 걷고 또 그림 그리던 나,
그리고 상담으로 소화 안 되는 부분들은 많은 책들을 보았다.
'모호함' '받아들이기' '인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삶이란 게 원래 모호한 것인데라고 입으로만 이야기를 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간들이 길었다.
아침이 가장 불안했다.
눈을 뜨기 전 의식이 먼저 차려지면서부터...
왜 회사를 그만두었을까.
그 사람하고는 왜 헤어졌을까.
내가 맞나?
등등
지나간 시간들, 지나간 선택들이 나를 딱히 행복하지 않게 하고, 지금의 어정쩡한 상황을 만들어 준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런 모호함에 빠져 불안해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불안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남의 꽃밭에 잘 자란 꽃들만 부러워하다가, 내 작은 새싹들이 말라죽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오늘을 사는 거,
나로 사는 거
이 당연한 말을 가슴으로 점점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이다.
모호한 오늘을,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를 산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내가 오늘을 채웠으니,
내일도 똑같은 모호함 속에서 오늘을 살면,
언젠가엔 이 오늘 오늘이 모여 지금보다 더 단단해지면 나에게 가지는 이 의구심을 좀 사그라들지 않을까?
그럼,
나는 조금 덜 불안하고,
본래의 나에 더 가깝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호함 속에 피어오르는 불안을 옆에 잘 모셔두고,
청소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하며
내일의 어제
어제의 내일
오늘의 지금을 일단 쌓고 본다.
아직도 조금 더 먼 미래를 설계할 마음의 힘은 없지만, 글을 쓰다 보니 묘하게 희망적인 느낌이다.
어제
오늘
내일은
괜찮은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