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편을 들어주고 새 나침반을 쥐어주고
나에게 가장 무서운 인생 선배처럼 구는 건 나였다.
늘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엄마의 잔소리보다 더 싫은 나의 잔소리.
그러나 이즈음에는 처음으로 말 잘 듣던 내가 말도 안 듣고 반항하고, 손을 질질 끌어도 밖에도 안 나오고 하니... 처음으로 내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왜 그러니?'
그 아이는 대답할 힘도 없어 보였고, 나 말고 딱히 도와줄 이도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정답게 말도 걸고, 그늘도 만들어 주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내가 나의 치어 리더가 되었다.
별 거 아닌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목표가 있는 삶에서,
나에게 너무 친절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사랑' '자기애'라는 이름으로 나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그리고 나밖에 믿을 것이 없던 외국 살이 20년은 그것을 아주 당연한 것이라 여기게 했나 보다.
인생이라는 게,
그 나이 때 나이 때,
어떤 시기 시기마다
모퉁이를 돌 때에는 이제껏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숨어 있고,
이제 인생의 반은 살아온 나이인 것 같은 데도,
아가처럼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 두성이다.
이렇게 엎어지고 넘어지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하다.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내 것이 아닌 요소들이 나를 불쑥불쑥 너무 찾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온 손님들이 좋건 싫건 그들은 내 집 소파에 앉아있으니, 또 반겨 주긴 하여 한다.
소리친다고 떠나갈 손님들도 아니고, 그들이 있고 싶은 시간만큼 내가 그들을 잘 상대해주어야 떠나가더라.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호한 마음을 그림 그리고,
조금 명확한 일들을 쓰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남을 사랑해본 경험은 많지만,
나를 이렇게 사랑해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인지,
'나'라는 애인도 사랑의 기쁨을 주더라..
부끄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