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반으로 딱 부러지던 날부터의 기록-D Book

에필로그-가장 눈부시게 설레던 어떤 날 나는 교통사고처럼 우울증에 걸렸다

by flyingfish


나의 D BOOK의 표지 디자인-by flyingfishstudio


D-book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가로 세로 17.7센티미터에 높이 4센티미터의 정사각형 나의 new-bookie의 이름이다.

Depreesion/Difficult/Different 우울의 힘듬이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챕터가 열리게 하리라는 그런 간절한 믿음 같은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나는 디자이너, 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 맞이에 무척 들떠있었다.

영주권을 받고 나서 곧 첫 집을 장만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작게나마 작업실을 만들었다.

2019년 12월 7일,

그날은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불면증은 그날부터 삼 개월을 갔고, 가슴 두근거림, 그리고 이상한 근육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부터 나는 자꾸 뒤가 무거웠고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못하게 되더니, 결국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가슴이 무겁고 저리는 듯이 아픈 증상이 시작되면서 나는 집에서 늘 웅크리고만 있었다.

SCARY Moment -2 B.jpg 우울증인줄도 모르고 일어나지 못했던 때 그린 그림
scary moment hyuna-2.jpg 목 뒤에 사람에게 눌리는 기분,나보다 등치 큰 사람을 끌고 가는 느낌

그리고 병원 몇 군데를 전전하면서'우울증''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설렘 가득한 시기의 나에게 예고 없이 들이닥친 이 '우울증'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외국에

오랜 연인과도 결별 후 혼자이고

직장도 없이,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로 출국도 금지된 시점에 어찌할 줄 몰라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같은 인생을 산 사람-늘 하고 싶은 일, 꿈, 목표 의식이 뚜렷했고, 내 필요에 따라 유학을 가고 또 다른 나라에서 취업을 하여 내 인생의 반을 외국에서 지낸-은 언제나 내가 무엇을 하는지 뚜렷이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상황 즉, 안갯속으로 걸어가는 상황이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우울증이란 말은 많이 들어보았어도, 이것이 내 상황으로 오는 것은 달랐다.

나는 너무나 멀쩡한데, 먹을 수도, 잘 수도,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프리랜서 일을 하는 사무실에 가슴 통증과 갑갑함으로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정확한 수치도 아무것도 없이 의사 선생님들의 말들, 인터넷에서 떠도는 약의 찬반론과 부작용들의 넘치는 정보들은 나를 더더욱 큰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도 내가 모르는 상황-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하는지 처음 알았다.


몇몇 병원을 찾았고, 의사 선생님들은 5-10분 정도의 간단한 문진과 약 처방을 주셨다.

저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묻고 또 물었지만, 거기엔 정확한 답도 없고 지금은 병의 원인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 삼 개월 동안 내 상황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었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병원마다 받아온 약봉지를 보면서 긴 생각을 했다.


샤워기를 보며 내가 이 샤워기에 목을 감는 상상과, 내 귓전에 자꾸만 죽어, 죽어

하는 환청인지 무어인지 모를 말들이 들렸다.

SCARY Moment -2 A.jpg


무서웠다.


그래, 교통사고 같던 어쨌든 우울증이라는 걸 담담히 받아들이고, 제일 먼저 내가 나를 없앨지도 모르는 이 위험한 충동은 약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힘든 삼 개월을 보낸 후 처음으로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응급조치는 하고 볼 일이었다.

scary moment hyuna-1.jpg 우울증에 목졸리고,싸우고 싸운 후 받아드리기로 한 날 그린 드로잉

잠을 자고 밥을 먹게 되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의지가 굳은 사람은 꼭 열심히 노력을 하고 아주 효과적으로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했다. 직업으로서든 인간으로서든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서 있었으므로 빨리 낫고 빨리 갈 길을 가야 했다.

이런 작은 돌멩이에 넘어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말할 수 있지만 작은 돌멩이에 넘어져 있을 때냐 아니냐는 내 결정이 아니었고,

나는

넘어져 있었다.


나는 '의지'와 '인내'그리고 '내 결정'이란 말들을 많이 썼는데, 그런 모든 것과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할 때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때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받아들임'을 배우는 과정, 그것이 우울이 나에게 가장 아프게 가르쳐준 것이고

또 그것이

내가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왜 나 같은 우울에 빠졌을까, 왜! 왜! 왜! 에 집착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그 마음을 접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끝도 없는 자기혐오 같은 말들이 내 안에서 쏟아져오고, 나를 비난하는 속에서도 조그맣게 피어오르는 하나의 마음-나를 살리고 싶다-는 그 희미하지만 분명한 소리가 있었다.

SCARY Moment -2 D.jpg


그 마음은 나에 대한 사랑이었다.


코로나가 가장 성행하던 때였으므로 공원도 문을 닫고 대부분의 카페들이 문을 닫았을 때였다.


그나마 호텔 카페는 짧은 시간이나마 문을 열고 있었다.

나는 매일 왕복 5킬로미터 정도를 걸어 그 카페에 일정한 시간에 들러, 텅 빈 카페에서 그날 그날의 나를 그리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스물이 넘어 유학을 가고 외국에서 일하며 내 인생의 반을 외국에서 지냈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나에게는 우울증은 큰 고난이었다.

내 작은 인생에 이것은 큰 파도였으니-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 혼자 이 안개를 어떻게 걸어왔는지 다른 사람과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외국에서, 직장도 연인도 없이 코로나의 한가운데에서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경계인으로 내 생애 첫 우울을 맞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이 우울증도 혼자서 맞이하고 알아가야 할 것 같다.


나에게는 괜찮아. 힘들어도 돼. 네가 다 옳아 등등 그 어떤 위로도 마음속으로 와닿지 않았다.

힘들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른데, 이 무거운 마음을 나누는 것도 힘들었고, 사실 내 끝도 없는 우울의 무거움에 내가 나 자신이 지겨워졌다.


이 마음의 병이 무서운 것은 내가 나 자신이 지겹고 싫어질 때, 그럼 다른 사람도 나를 지겨워하겠지란 마음이 서서히 자라 가까운 사람에게조차도 많은 것들이 조심스러워져서 내가 결국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금씩 거리를 두고-그것이 또다시 나를 외롭게 하는 이 괴상한 서클 속에 들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나를 한없이 이해하는 가족이 있었고, 조력자인 상담 선생님이 계셨다.

이런 단단한 베이스가 있는 것-한없이 감사한다.

그 이외에는 친구들, 주변인들보다는 인터넷의 무명의 사람들의 글, 책 속에서의 작은 희망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 상호작용이 없는 관계들이 내 마음을 가볍게 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이 짐같이 느껴져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내 이 어두침침하고 무거운 짐을 나누기도 버거웠다. 혹시 그 짐이 부담스러워서 나를 피하지 피할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괜찮아졌을 때 나도 그 무명 씨가 되어, 내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고 나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커졌다.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짐처럼 느껴질 때가 가장 쓸모없이 느껴졌을 때였고, 처음으로 간절히 나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삶이 아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속에서 일고 있었다.


이 마음의 병은 어떤 한 종류가 아니라 아주 많은 개개인적인 경험이 모여 이 하나의 병명으로 통합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이 기록들이 몇몇에게는 안갯속의 작은 불빛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도 헤매는 날이 많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이 모든 과정이 자기를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란 삶이 내게 던지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지나고 보니 나는 나 자신의 묻어두었던 어두운 그림자와 만났고 삶의 근본적인 문제와도 만났던 것 같다.

늘 내 안에 존재하던 문제였지만, 내 목표/목적지향적인 삶에서는 그런 일에 신경 쓸데가 아니라고 다 묻어두었던 것이 물 한 방울에 컵이 넘치듯, 그렇게 한 방울에 넘쳐흘러버렸나 보다.


빅터 플랭크의 글 속의 '괴로움 속에서도 용기를 일지 않는 태도, 몰락과 좌절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를 배운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외국 생활 동안 한국말로 쓰는 것도 무뎌졌는지, 아니면 내 감정 자체의 모호함이 언어라는 매체와 똑 떨어지는 말을 찾을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심플한 그림과 간단한 글로 내 마음이 반으로 딱 부러지던 날부터 내 하루하루를 기록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