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남, 사표내고 외항사 조종사에 도전하다

Prologue

by Flying Johan



20170511_3315900_1494476891.jpg


하늘이 어둡다. 자욱한 미세먼지가 요즘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날씨도 추웠다가 갑자기 더웠다가 무슨 옷을 입어야 좋을지 모르는 날의 연속이다.

최근 주위 사람들과 부지런히 인사를 하고 다녔다. 바로 며칠 전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출국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함께 기도합시다." 아버지가 식전 기도를 하자 옆자리 어머니에게서 작게 "아멘" 소리가 들린다. 그 뒤 밥을 먹고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안녕을 기원했다.


10년 전 군입대 할 때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니는 아들이 인사하면서 "건강히 계세요. 자주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자 결국 또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당신이 사랑으로 키운 아들이 갑자기 객지로 나가 몇 년 동안 생활한다고 하니 그때 같은 황량함을 느꼈으리라. 나는 외아들이다.

지도만 봐도 왠지 더위가 몰려올 것 같은 나라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떠나게 됐다. 한동안 그곳에서 먹고 자고 몇 년간 생활할 것이다. 어렸을 적 막연하게 꿈 꿔오던 외항사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 나이 벌써 삼십 줄이 넘은 것을 직시해야 했다. 이 시기에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내려 놓아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는 뭔가를 이룰 수 없기에. 한 치 앞이 안보이는 인생이기에 모두를 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남들이 흔히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흔히 말하는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로 6년간 일해왔다. 다니던 대학원을 수료한 뒤 학위논문도 작성 중이었다. 인생이 바름과 엇나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면 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교과서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인생의 정석이라면 정석, 평탄이라면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20170511_3315900_1494476895.png

그러기에 내 자신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이대로 갈 것인가, 한번 도전해 볼 것인가."

고민하던 차 언젠가 한 후배가 내게 말한 것이 기억났다. 몇 번이고 본인이 가고 싶어하는 분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직후였으리라. 술잔을 기울이면서 네 실력으로는 다른 곳도 충분히 갈 수 있으니 우선 다른 분야에 입사원서를 내는 게 어떻겠냐고 위로하자 꼬부랑거리는 발음으로 그는 말했다.

"형, 형은 죽기 전에 못 다 먹은 빵이 기억날 것 같아요, 아니면 못 다 이룬 꿈이 기억날 것 같아요?"

민항기 조종사가 되는데 직접적인 쓸모가 없는 덕목들이 있다. 학벌, (조종과 상관없는) 경력, 외모 등이다. 이란의 젊은이들이 제일 선망하는 회사가 어딘지, 쿠웨이트의 최고 명문대가 어딘지, 오만의 유명 배우가 누구인지 물으면 알까. 비행기를 조종하는 데는 이런 것들이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으며, 소용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전부 내려놓았다.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껏 쌓아올린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제로베이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15년 전 고등학교 때 멋모르고 공부만 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그래서 여기는 공평한 곳 같다. 날씨가 매우 덥다는 것만 빼면. 여름에는 기온이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

20170511_3315900_1494476899.jpg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여행이라 봤을 때 나는 삼십 줄까지 한국에서 잘 여행을 다녔고, 이제는 다시 중동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앞으로 나의 제2의 삶의 무대가 될 중동지역, 그중에서도 UAE에 대해 30대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 날 사표를 낸 뒤 갑자기 파일럿이 되려는 과정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기록하려 한다.

일종의 훈련일지가 될 수 있겠으나 그 과정에서 어려운 비행이론만 쓰는 것이 아닌, 이쪽 지역 여행 정보와 각종 꿀팁 등 알아두면 뼈와 살이 되는 얘기도 많이 공유할 생각이다. 왜냐고? 어려운 얘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는 게 첫째요, 이 나라가 알면 알수록 참 재밌는 곳이기 때문이란 게 둘째 이유다.

치타를 반려동물로 끌고 다니는 중동의 부호들과, 곳곳에 설치돼 있는 금자판기에서 금괴가 쑥쑥 나오는 것과, 기름 값이 우리나라의 반의 반 가격도 안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 다들 나처럼 "다음 생애에는 저도 석유재벌이 되게 해주세요"를 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