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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 Oct 31. 2019

그것도 위로라고

오늘의 행인1 : 파스타 집에서 고민을 말하던 여자



“야, 사는 게 다 그렇지. 새삼스러울 것도 많다.”

지난주에 먹고 맛있어서 일주일도 안 되어 다시 찾은 파스타 집이었다. 제대로 찐득한 소스가 흠뻑 묻은 면발과, 곁들여 나오는 상큼한 샐러드가 끝없이 입맛을 자극했다. 게다가 무려 함박 스테이크가 올려져 나오는 대범함까지 갖춘 파스타라니! 감탄하며 정신없이 포크를 들이대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단발머리 여자의 말이 날카로워 손을 멈다.

"그거야 그렇지..."

단발머리의 반대쪽에 앉은 여자 천천히 고개를 떨구어 포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좀 전까지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의 고민이 궁금할리는 없었지만 테이블이 가까운 바람에 들리는 건 들으며 먹어야 했다. 프라이버시를 지켜 그녀의 고민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실패'였다.


2년 남짓 준비했던 모든 게 수포가 되었나 보았다. 지난 여덟 번의 계절 동안 쏟아부은 노력을 그만 잊고 털어내야 하는, 힘겨운 시간. 

계속해서 포크만 문지르고 있는 그녀에게, 단발머리는 거침없는 위로와 조언 같은 걸 건넸다. 너만 그런 거 아니다, 살다 보면 그 정도는 별일도 아니다, 거기서 겁먹으면 네가 지는 거다... 뭐 그런 문장들이 반복됐다.
가만히 듣던 여자가 포크를 내려놓고 물을 한 번 마셨다. 얼굴이 좀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러게. 사는 건 다 그런 걸 거다. 애쓴다고, 노력한다고 다 되면 우리가 왜 힘들겠나. 아무리 기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또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  , 나보다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은 사람 쉽게 얻기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아진다. 안 좋은 일은 어떤 식으로든 닥칠 수 있고, 그 어떤 종류의 실패나 불행도 새로울 건 없다. 누군가는 겪었을 일이고, 나도 그 누군가와 엇비슷한 쓴맛을 삼키 된 것뿐. 그래. 새삼스러울 건 없다.

하지만 이제 막 실패를 마주하고 선 사람에게 '힘들어할 것 없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는 말부터 건네는 건 섣부르다. 그도 그쯤은 알 테니까. 설마 그걸 몰라서 힘들어하고 우는 게 아닐 테니까. 
그냥, 결실 보지 못한 내 노력이 좀 안쓰러워 한숨을 뱉어낼 시간이 필요한 거다. 물론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지만 지금은 괜찮지 않으니까, 늘 입고 있던 의젓함과 씩씩함에서 잠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한 걸 거다.

그러니까 그 모진 실패 앞에서 하는 위로와 조언에는 조금만 더 조심스러웠으면 좋겠다. 사는 게 다 그렇다는 말이 위로가 되는 상황도 있겠지만,  뻔한 진리의 말 뒤로 몰래 삭히고 썩어지는 마음은 없는지 한 번 좀 살펴볼 필요가 있는 일이다. 포크만 괜스레 만지작거린다든가, 혹은 물 한 모금으로 씻기지도 않는 속을 달래 식으로 새어 나오는 마음을.

 
게다가 뭘 얼마나 살았다고 새삼스러울 게 없나.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할 수 있지. 남들 다 겪은 일이라도 나한텐 새로울 수 있지.

아니 심지어 내가 겪었던 일조차도 또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지난주에 먹은 파스타라고 오늘 또 먹으면 맛없는 거 아던데. 그때도 상큼했던 샐러드는 오늘 먹어도 이렇게나 새삼스럽게 상큼한데.  예전 아팠던 일, 다시 겪어도 처음인 것처럼 아플 수 있으니까.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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