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뉴욕 병'에 걸릴 때가 있다. 이 병을 앓게 되면 세상 모든 중심이 뉴욕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뉴욕에 풍경이 어디에서든 둥둥 떠오른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연히 꺼낸 책에 서도 뉴욕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현란한 밤거리를 헤매는 주인공들을 보며 '저길 지나면 쉑쉑 버거가 나오는데?'를 생각하고 있다. 평소에 관심 없던 단골 카페 벽면에 걸려있는 싸구려 액자들 사이에서도 심심해서 꺼내본 잡지에서도 뉴욕은 툭 튀어나온다.
너도 뉴욕이구나
그럴 땐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를 알아봤다. 일하면서 그렇게 지겹게 갔던 뉴욕행 항공기 가격이 어마 무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일 두 편씩 전좌석 만석으로 꽉꽉 채워 타던 승객들이 그렇게들 부자였다니... 비행시간은 어찌나 긴지 가는데 12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앉아 가야 하다니... 난 아무래도 앉아서 가는 것보단 서 일하면서 가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승무원들은 제일 힘든 비행을 뉴욕이라고 얘기한다. 쉬지 못하고 일하느라 뉴욕을 걸어서 다녀왔다고 표현한다. 인천 공항 입국장에서 동료를 만나 "나 018 (뉴욕) 다녀왔어." 하면 "다 알지~ "하는 표정으로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조용히 등을 두드려 줄 것이다. 뉴욕 비행은 언제나 만만 석이었다. 자유분방하고 로맨틱할 것 같은 LA , 시애틀이 아니다. 예의가 있는 동부 신사들이 타는 애틀랜타, 달라스, 시카고도 아니다. 특별히 특별한 곳! 뉴욕에 오가는 사람들은 전 세계 어느 노선보다 까칠하고 빡빡한 도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뉴욕에 관한 기억이 많다. 기억에 남는 진상 손님 , 최악의 담배 사건, 기억에 남는 최악의 진상 사무장, 최악에 비행하면 단연 뉴욕이었다. 조++이 마카다미아넛을 던지고 비행기를 세웠던 그곳도 뉴욕이었다.
승무원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뉴욕을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짝사랑하고 있다. 나의 첫 장거리 비행이었던 뉴욕. 도착하면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있어서 더 즐거웠다. 타임스퀘어 호화찬란한 전광판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영화에서나 보던 노란 택시들이 다니는 그 길을 겁먹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너 다녔다.
와... 이건 언제 적 뉴욕 사진인지
시차에 져서... 그 유명하다는 오페라의 유령을 반은 졸면서 봤다. '내가 뉴욕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니~' 봤다는 게 중요했다. 나 홀로 집에 케빈이 엄마 찾았던 입이 딱 벌어지게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예쁘고 사람 많던 그림 같은 스케이트장, 백화점 건물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레이저쇼를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뉴욕의 크리스마스
매년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던 때가 있었다. 그땐 몰랐지 이렇게 뉴욕이 가기 힘든 곳인지... 내가 이렇게 뉴욕을 그리워하게 될지...
첼시마켓
반쯤 벗고 심하게 섹시한 모습으로 아베크롬비 앞을 지키던 멋진 오빠도, 첼시마켓에 랍스터도, 추운 겨울 감미옥에서 먹었던 설렁탕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봤던 숨 막히는 그 야경도... 뉴욕 참 그립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이번 뉴욕 병의 처음 시작은 위대한 게츠비였다. 위대한 개츠비를 새롭게 번역한 김영하 작가는 그랬다. '이 책에 배경이 되는 뉴욕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번역은 그 시대에 맞게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번역을 마치기 위해서는 결국 뉴욕에 다시 가야 했다고 했다. 우습게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꼭 뉴욕에 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게츠비
애들 머리 빗겨 주다가 TV에 나온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야경을 보고 주책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 왜 울어?" "엄마 뉴욕 가고싶어..." 안그래도 가기 힘든 뉴욕 코로나19로 더 가기 힘들어졌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비즈니스타고 샴페인 먹으면서 누워서 뉴욕에 가고싶다. 그동안 비행기에서 많이 걸었으니 좀 누워가면 좋겠다. 도착해서 많이 걸어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