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반대로 살기

엄마처럼은 안 할 꺼야

by 플라잉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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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뉴욕 간다고? 엊그제 파리에서 왔는데 또 뉴욕을 간대.”

내가 비행을 할 때 엄마는 친구들만 만나면 일부러 전화를 걸어 어디 가냐고 물어보셨다. 자식 자랑을 찐하게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고 나서야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큰딸이 되었다. 비행을 가기 전엔 어디 가냐고, 다녀오면 어디 다녀왔냐고 몇 번씩 물었다. 나는 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뉴욕이라고. 뉴욕. 뉴욕.”


공항으로 향하는 출근길은 늘 엄마 아빠가 번갈아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은 딸을 옆자리에 태우고 가는 길이 두 분에게는 가장 즐거운 드라이브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승무원 이전에 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었으니까. 성적과 결과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싫었다.


대학 시절 내내 엄마의 가게에서 일을 했다. 처음에는 경양식집, 그다음은 갈비집, 호프집까지... 힘들다고 얘기하는 내게 “동생처럼 공부를 잘했으면 내가 일을 시키겠니?”라고 말하는 엄마는 괴물 같았다. 아빠 앞이나 밖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순한 사람이지만 내게는 팥쥐 엄마였다. 청소며 빨래며 막둥이 육아까지 늘 내 차지였다. 바쁜 엄마가 오기 전 집을 치워놔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놀다가도 급히 돌아와 빨래를 개곤 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의 눈치를 읽는 아이였다. 호랑이 할머니의 시집살이에 겉도는 아빠, 아픈 동생까지... 엄마의 기분이 어떤지, 지금 말을 걸어도 되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살피며 일찍 철이 들었다. 엄마는 늘 바빴고 걱정이 많았다. 사람들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 나에게만 털어놓았다.


어느 날 아빠 사업이 망했다. 비행을 다녀오니 집이 사라져 있었다. 한여름, 우리 짐들은 공장 창고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냉장고에선 시체가 썩는 듯한 악취와 함께 진한 국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해결사라도 된 듯 엄마를 위로하고 현실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도 엄마 전화가 오면 반가움보다 먼저 ‘또 무슨 문제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된다. 엄마는 내게 여전히 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세운 기준은 ‘엄마처럼 하지 않기’였다. 기댈 수 있는 엄마, 항상 내 편인 엄마,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 기다려주는 엄마, 아이를 부담으로 누르지 않는 엄마. 나는 엄마와 반대로 가는 것이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꾸 이상한 마음이 든다. 미웠던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것도 이렇게 벅찬데, 우리 엄마는 셋을 키우며 일을 놓지 않았다. 문득 스물세 살의 어린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친정엄마도 곁에 없었는데, 그 무서운 시어머니와 작은 집에서 살며 아픈 아이를 키우고 마음이 텅 빈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왔을까?


아빠 사업이 망한 뒤 간병인, 직원 식당, 장애인 활동보호사까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엄마는 항상 사모님 같은 피부와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내가 애들 키우는 걸 보며 “내가 너희 키울 때는 살기 바빠서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사과도 잘하는 엄마.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이제야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꾸 보인다.


“내가 아기 천사일 때 엄마한테 내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찾아왔어!”
예전에 딸들과 대화를 나누다 큰딸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옆에 있던 둘째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도 먼저 가고 싶었는데 언니가 먼저 갔잖아.” 한참 웃다가 문득 마음이 멈췄다. 어쩌면 나도 내가 필요한 엄마를 찾아간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엄마의 삶을 이해해보려 한다. 해결사도 아니면서 엄마의 인생에 자꾸 끼어들어 마음 쓰며 살지 말아야겠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잘 꾸려가는 사람이니까. 엄마와 반대로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그 모진 풍파 속에서도 자식 셋을 이만큼 키워낸 엄마의 생명력은 내가 닮아야 할 단단함이었다. 내 딸들을 딱 나만큼만 키워낼 수 있다면, 나도 엄마처럼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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