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음에 크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친절한 사람.”
“이다음에 크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친절한 사람.”
“어떤 것도 친절함을 이길 수 없어. 친절함은 조용히 모든 것을 압도해.”
찰리 맥커시의 그림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이 책을 읽고 내가 그동안 이야기했던 친절한 태도의 슈퍼파워를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친절함은 조용히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이 분명히 있다. 친절함은 사람을 살린다. 관심 있는 눈빛,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토닥임은 다시 일어날 힘을 준다. 나는 조용히 압도하는 사람이고 싶다.
“어머니, 경민이는 나중에 정말 멋진 어른이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와 학원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그때 우연히 길에서 만난 국어 선생님은 우리를 보시고 반갑게 뛰어오셨다. 처음 만난 엄마 앞에서 내 자랑을 잔뜩 해주셨다. 엄마 앞에서 나를 칭찬해주고 자랑해준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 학교로 처음 부임한 신입 선생님은 도서관 담당이셨다. 나는 독서부 활동을 하며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늘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곤 했다. 집과 교실을 벗어나 편하게 마음을 둘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다 너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야. 한두 명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우리 팀에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잊지 마.”
팀장님께서 지나가듯 해주신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말을 듣고 항상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픈 병이 있었다. 지금도 완치한 것은 아니지만 승무원으로 일할 땐 중병이었다. 팀에서 나를 유독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선배가 있었다. 너무 착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쁜 사람이라곤 상상도 못 할 인물이었다. 사람들과 있을 땐 전혀 모르겠지만, 둘만 있으면 교묘하게 다른 후배들과 나를 비교했다. 사람들이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조심하라고 귀띔도 해주셨다. 나는 내가 더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잘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더 나빠지기만 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안티가 있는데 내가 뭐라고 다들 나를 좋아할 수가 있나?’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봤던 말이지만, 필요한 순간 딱 맞는 누군가가 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마음속에 콕 박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친절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빌려주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결국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그래서 나는 친절을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친절이 타고난 성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친절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상황을 이해하며,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유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지 중 가장 선한 것을 골라내는 인지 능력인 셈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지능(EQ)이 높은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지혜로운 선택이다.
예전에 중국에서 살던 시절, 아파트 입구에 항상 밝게 인사해 주는 경비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항상 단정한 유니폼 차림에 인사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중국어를 잘 못해서 곤란한 상황마다 슈퍼맨처럼 나타나 택시도 불러주고, 택배 전화도 받아주며 끝까지 문제를 해결해 주곤 했다. 그분이 근무하는 날이면 아파트 입구가 유난히 환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그분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아파트 주민이던 어느 사장님께서 그분의 태도를 보고 자신의 가게로 스카우트해 갔다고 했다. 역시 친절한 사람은 어디에 있든 결국 빛이 난다.
이제 세상은 AI가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정점에 다다를수록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다정함’이다. 우리는 끝까지 바라봐 준 사람, 한 번 더 눈을 맞춰준 사람, 괜찮냐고 한 번 더 물어봐 준 사람을 기억한다. 키오스크로 직원을 대신해야 하는 순간, 마지막까지 남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친절한 사람이다. 친절은 기술보다 강력하게, 조용히 살아남는 힘이 있다.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결국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아픔을 단단하게 감싸 안을 줄 아는 친절한 사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