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만든 요새였는지.”
폭싹 속았수다 대사 중
주말 아침, 통창으로 햇살이 조용히 들어온다.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창에는 하얀 쉬폰 커튼과 베이지색 암막 커튼이 겹쳐 있다.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와 작은 협탁, 그 위에 놓인 책. 스탠드 조명과 붙박이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단정한 방이다. 나는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늘 이런 침실을 꿈꿨다. 세계 여러 도시의 호텔방을 오가며 느꼈던 그 조용한 안락함. 깨끗하게 정리된 하얀 침구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언젠가 나도 이런 침실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하면서 우리 집 안방을 호텔방처럼 꾸미려고 노력했다. 커튼부터 크림색 벽지, 라운드 골드 손잡이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서 골랐다. 주말이면 부지런한 남편이 먼저 일어나 주방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집 안으로 천천히 번진다. 그 향에 눈을 뜨는 주말이 아직도 낯설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번 주말에도 그가 돌아왔다. 우리는 주말부부다. 작년에 창원으로 이직한 그는 금요일에 와서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떠난다. 나는 요즘 금요일을 기다린다. 장을 보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힘든 주중을 보내고 돌아온 그가 이 집에서만큼은 푹 쉬었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집이 그의 요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제든 다시 돌아오고 싶은 그런 공간이기를 바란다.
나는 한때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 그림 같은 안방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호텔처럼 꾸민 침실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시간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 매일이 전쟁 같았다. 매일 이혼 이야기가 오갔고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비수 같은 말도 서로에게 던졌다. “다 네 탓이야.” 절규하듯 서로를 원망하던 시간들, 조용해야 할 안방은 우리 부부의 가장 거친 전쟁터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의 중국 주재원 발령을 따라 중국 난창에서 3년을 살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설 명절을 지내러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국경이 닫혔고 우리는 다시 중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짐 정리는 영상통화로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화면 너머로 하나씩 정리했다. 그 화면 속 집을 바라보며 우리의 시간도 함께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한국에 왔지만 집이 없었다. 다음 행선지도 불분명했다. 이모 집과 동생 집을 전전하며 겨우 생활을 이어갔다. 그 사이 남편은 또 태국으로 발령이 나 다시 해외로 떠났다. 코로나 상황이라 가족이 함께 갈 수도 없었다. 어디에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중국에서 3년, 태국에서 1년 넘게 남편은 해외에 살았다. 신뢰가 무너진 관계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달았다. 남편이 다시 돌아왔을 때 지친 그는 나를 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손이 닿는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안방 문을 굳게 잠갔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혼 이야기는 매일같이 나왔고 결국 소송까지 갔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은 다시 태국으로 떠났다. 그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이들도 가장 잔인한 선택 앞에 서 있었다.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초등학교 3학년이던 큰딸이 말했다. “우리가 이 집에 살 테니까 엄마 아빠가 돌아가면서 오면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쿵 맞은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싸움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가정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집도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겨우 한 땀 한 땀 다시 만든 집이었다. 그 집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다시 불안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소송을 취소하고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환대해 주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아빠 환영 파티를 준비했다. 플랜카드를 붙이고 한우를 굽고 꽃도 사고 케이크도 주문했다. 과거를 붙잡기보다 아이들을 위해 조금 더 단단한 요새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문을 잠그고 비난하던 무서운 아내가 아니라 용서하고 안아주는 아내가 되고자 노력했다.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지혜로운 아내로 우리 가정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 역시 따뜻해진 가정과 아이들의 사랑 속에서 다시 한국 생활에 적응했고 가족을 위해 노력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이런 장면이 나왔다. 어른이 된 딸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만든 요새였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멈춘 것 같았다. 집은 그냥 만들어지는 공간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다시 손을 내밀고, 다시 돌아오고, 끝내 지켜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렇게 기억해 주면 좋겠다. 늘 평온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가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집이었다고.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요새 하나쯤은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가기를. 절대 다시 못 살 것 같던 부부 사이도 더 노력하고 더 조심하며 아이들의 요새가 되기 위해 살아가다 보니 조금씩 좋아졌다.
이번 주말에도 그가 건강히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다정함이 깃든 우리의 단단한 요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