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세탁에 성공했다.
“20년 전 경민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넌 곧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날 거야. 취업도 잘하고,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도 될 거란다. 그리고 마침내 고려대학교 석사 졸업장을 받게 될 거야!”
2026년, 학사 졸업 후 20년 만에 다시 선 졸업식장에는 당시엔 감히 상상도 못 할 풍경이 펼쳐졌다.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두 딸과 함께한 그 자리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학부 졸업 후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나는 도피하듯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겐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처음 본 토익 점수는 발 사이즈보다 조금 더 높게 나왔을 뿐이었다. 대학 시절 내내 쉬지 않고 어머니의 가게 일을 도왔던 나를 위해, 엄마는 화장실 천장에 숨겨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퇴직금이라며 연수 비용을 건네주셨다.
운명처럼 캐나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고, 그의 권유로 도전한 끝에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었다. 꿈꾸던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엔 늘 결핍이 있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고, 혹시나 내 모자람이 들통날까 봐 늘 한 발자국 뒤에 서 있었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 다녔고, 운 좋게 대학 강의와 MC 활동까지 하며 사람들 앞에 섰지만, 프로필의 ‘지방 사립대 졸업’이라는 한 줄은 늘 부끄러운 꼬리표 같았다. 그래서 나는 꼭 '학벌 세탁'이 하고 싶었다.
퇴직 후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중국에서 3년을 보냈다. 코로나19로 급히 귀국했을 때, 당연히 다시 비행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길어졌고, 경력직 승무원 시험에서 내리 8번을 탈락했다. 주변에서는 “너를 못 알아보는 회사가 이상하다”며 위로했지만, 나이 많고 경력 단절이 긴 나를 선뜻 채용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감사하게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써온 글을 보고 지역 대학 항공서비스과에서 강의 제안이 왔다. 10년의 승무원 경력 덕에 외래교수로 강단에 서게 되었지만,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학위가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자극을 받은 나는 대전에서 한 시간 거리인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경영전문대학원(조직관리 전공)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면접 날, 면접관 교수님이 나를 “교수님”이라 불러주셨을 때의 그 어색하고 묘한 기분은 잊을 수 없다. 대학원 생활은 현실이었다. 비싼 등록금과 워킹맘으로서의 고단함, 매주 쏟아지는 논문 과제와 팀 프로젝트는 강행군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심해지며 출강하던 병원이 지정병원이 되어 대면 강의가 사라졌다. 다시 혼자 주재원으로 나간 남편과는 이혼 소송을 고민할 만큼 관계가 악화되었다. 경제적 압박까지 더해지자 결국 나는 휴학을 선택하고 생존을 위한 사투를 시작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강의를 내려놓고 3년간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초등 영어 교습소를 운영했다. 귀여운 아이들과 믿어주신 학부모님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프랜차이즈 운영과 월세 걱정을 하며 보낸 그 시간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 공간에 머물기보다 사람들을 만나며 움직여야 에너지를 얻는 ‘역마살’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3년의 휴학 연한이 끝나 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복학을 결정했다. 강의도 재대로 다시 시작하려고 학원을 내놓았다. 하루 만에 새로운 원장님이 나타나 빠르게 인수인계를 하고 정리했다. 결정을 하자 모든 상황이 맞물려 돌아갔다.
복학 후에는 좋은 원우들을 만났고, 새로운 일도 협업하게 되었다. 특히 AI와 ChatGPT를 활용해 논문을 정리하고 발표 구조를 잡는 법을 배우며 강의 콘텐츠도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과의 관계 회복이 큰 힘이 되었다. 남편의 학비 지원과 육아 조력 덕분에 마침내 학업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석사 과정이 끝났다. 나는 내가 시작만 잘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끈기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책읽기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하고 있다. 회사도 10년을 다녔고, 강의를 11년째 하고 있다. 요란하게 잔잔하게, 결국 끝내 해내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졸업식 후 집에 돌아와 아버님의 연세대 석사 졸업 사진을 꺼내 보았다. 돌쟁이 꼬마였던 애기는, 마흔이 훌쩍 넘은 아이둘의 고려대 석사 엄마가 되었다. 나는 학벌을 세탁하러 대학원에 갔지만, 정작 세탁된 것은 나의 자존감이었다. 나는 잘 버텨내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끝을 보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 나의 다음 목표는 ‘김 작가’다. 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보는 오랜 꿈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