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엄마의 딸입니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과 나의 엄마들이 있으니까." 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중
우리 엄마는 1남 3녀 중 막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시절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부모를 잃은 막내 동생이 안쓰러웠던 형제들은, 자신들도 같은 처지이면서 막내인 엄마를 공주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덕분에 엄마는 형제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케이트까지 배울 수 있었다.
이모들은 언제나 우리 집의 '해결사'였다. 막내 동생이 태어날 때도, 이사를 할 때도, 졸업식 날에도 이모들은 가장 먼저 달려와 자리를 지켰다.
우리 대가족은 추억이 참 많다. 늘 함께 휴가를 떠났고, 한강에서 번개 모임을 하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모여 웃고 떠들고 가끔씩 싸우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을 배웠다. 한 부모만 보고 자랐다면 알 수 없었을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었던 건, 다양한 롤모델이 되어준 이 어른들 덕분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나의 어른들은 나를 위해 안전하고 건강한 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도 있다. 평생 무사고 이모부의 차가 역주행 차량과 정면충돌했던 날이다. 블랙박스 속 사고 영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큰이모는 머리를 크게 다쳤고, 작은이모는 폐와 성대를 다쳐 목소리를 잃었다. 이모부 역시 허리를 다쳐 오랜 시간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몇 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회복은 느렸고 후유증은 남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웃고있다. 여전히 김치를 담그고, 여전히 달려온 조카를 따뜻하게 반긴다. 고난 앞에서도 일상을 지켜내는 그 뒷모습이 참 멋지시다.
최근 큰이모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서울 길에 미루지 않고 들렀다. 어릴 적 주말마다 가던 큰이모네 집. "사랑한다, 우리 경민이가 최고다"라며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주시는 이모의 응원을 들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모부도 조카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셨다. "오늘은 가게 문 안열고 쉴꺼야!" 하시며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는 수원 작은이모네를 찾았다. 두 딸이 모두 해외에 있어 쓸쓸할까 걱정했는데, 갑작스러운 조카의 방문에 이모는 종류별로 김치를 가득 채워 주셨다. 나는 그렇게 여전히 이모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에는, 일찍 어른이 되어 동생들을 지켜낸 든든한 울타리, 우리 외삼촌, 외숙모가 있었다. 그 울타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가족이 존재할 수 있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과 직접 찾아가는 용기. 그것이 사랑의 본질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이제 그 기록을 더 많이 남겨 보고 싶다. 나 역시 이제 누군가의 엄마이자 이모, 고모, 외숙모인 '어른'이 되었다. 김치통을 꽉꽉 채워주던 그 손길처럼, 가장 먼저 달려와 주던 그 발걸음처럼, 나도 나의 어른들 처럼 누군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지.
1. 기억에 남는 어른이 있나요?
2.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요?